[책과 함께 창의 경영] (4) "카네기 '인간관계론'서 삶의 원칙·경영 노하우 발견했죠"
"헤어 디자이너는 고객을 모시는 동안 서로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고객이 자기가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 디자이너가 맞장구를 치면 깜짝 놀라요. '아니,헤어 디자이너가 그런 책을 어떻게 아느냐,읽어봤느냐'면서요. 그 다음부터는 헤어 디자이너를 보는 눈이 달라져요. 직원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보람을 느끼죠."

국내 최대 헤어브랜드인 준오헤어의 강윤선 대표(50)는 독서광이자 직원들에게 독서를 강요하는 CEO다. 준오헤어의 전직원 2000여명은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이면 오전 7시까지 출근해야 한다. 그달 초 강 대표가 선정한 책에 대해 63개 직영 매장별로 토론을 하기 때문이다. 독서토론회 발표자는 당일 그 자리에서 무작위로 선정한다. 만일 책을 읽지 않았다면? 당연히 불호령이 떨어진다. 하지만 15년이나 된 일이라 이제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처음엔 쉽지 않았어요. 15년 전만 해도 헤어 디자이너 가운데 대학 나온 사람이 많지 않았고,책 읽기를 정말 싫어했거든요. 그래서 독서토론회 때 안 읽은 게 들통나면 제가 그 자리에서 화도 내고,속이지 말라며 야단도 치고 그랬죠.심지어 한 사람은 1~10쪽,그 다음 사람은 11~20쪽 하는 식으로 하루 종일 읽히기도 했어요. 하지만 요즘은 우리 직원들이 저보다 더 똑똑하고 논리적이에요. "

강 대표는 "직원들이 오래 책을 읽다보니 독서가 회사의 문화로 자리잡아서 안 읽는 사람이 이상할 정도"라고 했다. 심지어 직원들 부모가 전화를 걸어 "학교 다닐 땐 책을 전혀 읽지 않던 아이인데 어떻게 했기에 책을 읽게 됐느냐.거기가 도대체 뭐하는 회사냐"며 감탄하고 고마워한다. 강 대표의 '강요'로 준오헤어 직원들이 그동안 읽은 책은 180여권.주로 자기계발,경제 · 경영,성공 스토리,자서전,디자인,헤어 트렌드에 관한 책이 많지만 앞으로는 시 · 소설 · 역사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해 '독서편식' 현상을 해소할 계획이다.

"책을 읽음으로써 헤어 디자이너에 대한 고객의 인식이 달라지자 직원들이 스스로 자부심을 갖게 됐습니다. 또 자부심이 생기니까 프로가 되기 위해 스스로 더 공부하게 됐고,가치관과 비전이 바뀌더라고요. 특히 직원들이 공통의 책을 읽음으로써 소통과 창의성이 정말 좋아졌어요. 가령 《혼 · 창 · 통》을 읽고 나서 토론회를 할 땐 '자기 작품(헤어 디자인)에 혼이 있어? 창이 있어? 통했다고 생각해?'라고 서로 이야기하게 되거든요. 또 책을 통해 수많은 간접경험을 할 수 있으니 책은 그 자체로 크리에이티브의 원천이에요. "

가난한 연탄 · 쌀가겟집 딸로 태어나 고교 졸업 후 헤어 디자인의 길로 들어선 그는 "독서가 나를 만들었다"고 단언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머물고 싶었던 순간들》이라는 연애소설을 읽으면서 암으로 죽어가는 주인공이 안타까워 밤새 울던 소녀는 '삼중당문고'에서 《카네기 인간관계론》을 읽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늠했다. 또 커서는 싱가포르 전 수상 리콴유의 자서전을 읽으며 비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성공론》에 나오는 인간관계의 원칙은 그가 지금도 수첩 속에 넣고 다니는 삶의 지표다.

"제가 다른 건 아껴도 책값은 절대 아끼지 않습니다. 얼마를 주고 샀든 그 중 한 장만 봐도 책값 이상의 가치가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1만~2만원을 주고 산 미래예측서를 통해 20년 뒤의 세계를 상상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태양은 꽃잎을 물들이지만 책은 사람의 안목을 물들인다는 게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

강 대표는 특히 자서전,성공기를 좋아한다. 《리콴유 자서전》에는 가난한 나라를 독립시키고 발전시킨 그의 카리스마와 비전이 들어있고,정주영 · 이건희 회장의 자서전에서는 그들의 경영원칙을 배울 수 있다. '더 바디 샵'을 창업한 아니타 로딕의 《영적인 비즈니스》에서는 추진력과 상품에 대한 정직함을,'1만시간의 법칙'을 넘어 하루 8시간씩 20여년을 공부했다는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플렉스》 같은 책에서는 어떻게 사는 게 옳은 길인지를 배웠다고 한다. 또 3평짜리 창고에서 단 4명이 시작해 30년 만에 140개 계열사에 직원 13만여명을 거느린 거대 기업을 일군 일본전산의 나가모리 시게노부 사장이 쓴 《일본 전산 이야기》에서는 '될 때까지,즉시,반드시'의 가르침을 얻었다.

덕분에 준오헤어에는 책이 넘쳐난다. 본사가 있는 서울 청담동의 '에비뉴준오' 5층 사무실은 2000여권의 책이 벽마다 꽂혀있어 도서관을 방불케 한다. 디자이너 교육기관인 준오아카데미에도,식당에도 필독서들이 즐비하다.

강 대표는 "책이 나와 우리 직원들,그리고 준오헤어를 키웠다"며 "시간보다는 읽으려는 의지가 책 읽기의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