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 이어 프랑스,영국 등 유럽의 경제대국들까지 신용강등 위기에 휩싸였다. 특히 프랑스 예산장관이 자국의 신용등급이 최고 수준에서 떨어질 수 있다고 위기감을 토로하면서 그리스발 재정위기가 유럽 핵심국들의 도미노 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유럽 재정위기는 글로벌 경제위기가 끝나기엔 아직 멀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라며 "유럽 재정위기가 계속해서 (유럽 밖으로) 전염될 위험성이 매우 높다"고 경고했다.

◆'마지노선'마저 무너지나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프랑수아 바루앙 프랑스 예산장관은 30일 카날플러스TV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프랑스가 받고 있는 최고 수준의 AAA등급은 언제나 당연하게 부여받는 보장된 것이 아니다"며 "AAA는 강력한 재정감축 조치를 단행하지 않으면 유지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바루앙 장관은 "신용등급 유지는 적잖게 부담스러운 목표"라고 덧붙였다.

프랑스 예산장관이 자국 신용등급의 '강등'가능성을 언급한 발언은 피치가 지난 28일 스페인의 국가신용등급을 한 등급 강등한 직후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프랑스는 올해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8%에 달하고 있으며 2013년까지 재정긴축을 통해 유럽연합(EU)의 안정성장 협약 합의 기준인 3% 이내로 낮춘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될 경우,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조달 비용이 급상승하면서 정부 계획은 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게 된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역시 신용등급 하락 우려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영국은 이번 주 주요 신용평가사들의 등급 평가를 앞두고 재정긴축을 주도할 데이비드 로스 예산담당 장관이 주택수당 불법 청구 스캔들로 실각하는 대형 악재를 맞았다. 이 사건은 야당과 노동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재정긴축안을 추진하려던 보수 · 자민당 연정에도 적잖은 타격을 입혔다는 게 영국 언론의 평가다.

유럽 최대 경제대국 독일 역시 재정적자 부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독일은 재정적자 규모가 GDP 대비 5% 수준으로 유로존 내 가장 안정적인 수준이지만 역시 EU의 합의 기준 3%를 훌쩍 뛰어넘고 있다. 이에 대해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30일 빌트암존탁과의 인터뷰에서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현행 7%의 부가가치세를 부과하고 있는 소비재 상품들에 대해 19%까지 인상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화약고 불은 계속 번져

재정위기의 화약고로 평가받고 있는 스페인의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호세 루이스 사파테로 스페인 총리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야당에 지지율을 역전당하면서 조기 총선 요구 압박에 직면해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스페인 국민 다수가 조기 총선을 원하고 있고 총선이 실시되면 현 사회당 정부의 실각이 유력하다"고 보도했다.

스페인은 지난주 카하수르 저축은행을 국유화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의 우려 요소로 부각되고 있으며 국내 부동산 버블 붕괴로 대다수 저축은행들이 어려움에 빠져있다. FT는 "국제시장에서 자금조달이 끊긴 스페인 저축은행들이 경쟁적으로 합병 협상을 진행 중이지만 현재 45개인 저축은행을 15개로 줄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도 "유럽에서 디플레이션 조짐이 커지고 있지만 정작 유럽중앙은행(ECB)은 인플레이션을 방지하는 데만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독일의 석학 위르겐 하버마스 역시 일간 차이트 기고문을 통해 "과거 서독은 나치 시절의 원죄를 속죄하기 위해 '정상국가'를 지향하며 유럽 각국과 협력하고 양보하는 리더십을 보였다"며 "통일 후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난 독일이 제멋대로 행보를 보이면서 오히려 유럽 내에서 리더십을 상실했다"고 비판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