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거대 기업 간 인수 · 합병(M&A)에 중국의 반독점 당국 입김이 커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9일 보도했다. 세계 1위 제약기업 화이자가 최근 중국 내 돼지 백신 사업을 매각한 것은 지난해 이뤄진 화이자와 경쟁사 와이어스 간 M&A를 중국 상무부가 승인할 때 내건 조건 때문이라고 월지는 전했다.

미국 회사인 화이자와 와이어스 합병에 중국 당국은 합병 기업의 독점력이 커져 중국 시장에서 영향력이 높아진다는 이유를 들어 중국 내 돼지 백신 사업 매각을 권고했다. 화이자의 와이어스 인수 금액이 680억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5000만달러 규모 돼지 백신 사업 매각은 큰 의미를 둘 수 없지만 세계 M&A 시장에서 중국이 미국과 유럽연합(EU)에 이어 제3의 반독점 규제 축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월지는 분석했다.

실제 2008년 중국에 반독점법이 도입된 이후 5건의 M&A가 무산되거나 조건부로 승인을 받았다. 문제는 이 같은 규제가 외국의 거대 기업들로부터 토종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전용되면서 또 다른 무역장벽이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화이자의 중국 내 돼지 백신 사업을 인수한 곳은 중국 국유기업인 하얼빈제약으로 다른 다국적 제약사인 노바티스 일라이릴리 등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하얼빈제약은 앞으로 3년간 화이자의 미국 네브래스카 공장에 인력을 보내 교육을 받게 되고 이는 또 다른 동물 백신을 만드는 기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해 일본 미쓰비시레이온이 영국 아크릴업체 루사이트를 16억달러에 인수할 때도 중국 당국이 생산라인 일부를 매각하는 조건으로 승인을 내준 바 있다. 일본에서 파나소닉이 산요전기를 인수할 때 역시 해외 반독점 당국 가운데 중국이 가장 까다로운 조건을 걸어 승인을 내줬다. 파나소닉은 중국 당국의 요구에 따라 하이브리드카에 쓰이는 니켈금속 하이드라이드 전지 생산 부문을 매각하고,이 전지를 만드는 도요타와의 합작법인 지분도 40%에서 19.5%로 낮추기로 했다.

인베브와 안호이저부시가 합병해 생긴 AB인베브가 지난해 중국의 간판 맥주업체 칭다오맥주 지분 19.9%를 일본 아사히맥주에 매각한 것도 중국 당국의 요구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코카콜라의 경우 24억달러를 들여 중국 최대 주스업체인 후이위안 인수에 나섰으나 지난해 중국 반독점 당국의 승인을 받지 못해 포기했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