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두카토(베니스 금화)를 보낼 테니 내가 원하는 물건들을 구입한 후에 돈이 조금이라도 남으면 금목걸이나 최신형의 우아한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사는 데 다 쓰고 돈을 남겨오지 않았으면 좋겠어.필요하다면 더 써도 좋아.최신 상품을 가져오기만 한다면 당신에게 빚도 지겠어.…(중략) 다른 사람이 입는 수준에 그치는 물건이라면 차라리 없는 편이 나아!"

1491년 4월 이탈리아 궁정의 여인이었던 이사벨라 데스테 후작부인은 프랑스로 막 출발하려는 지인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당시 열일곱 살에 불과했던 그녀는 "내가 갖고 싶은 것은 조각된 자수정,검정 묵주,호박과 황금,카모라용 파란 천,망토용 검은 천인데 1야드에 10두카토라도 좋으니 이 세상에 필적할 만한 게 없으면 좋겠어"라고 단언한다.

이사벨라는 풍부한 재산을 바탕으로 평생 열정적으로 쇼핑을 즐긴 '신상녀'였다. 거의 100명에 달하는 남녀 가신과 하인의 의식주를 책임져야 했던 그녀는 자기 소유의 돈이 많았고,그림,골동품,악기,귀중품 등을 가리지 않고 사들였다.
[책마을] 신상녀·짝퉁·쇼퍼홀릭…르네상스 시대에도 있었네

《르네상스 시대의 쇼핑》은 지금부터 500~600년 전인 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쇼핑 문화를 탐색한다. '1400~1600년 이탈리아 소비자 문화'라는 부제를 단 이 책에서 저자인 에블린 웰치 런던대 교수(르네상스학 전공)는 르네상스 시대의 시장이 근대적 쇼핑의 시발점이라며 당시 시장의 중심이었던 이탈리아 중부와 북부를 집중적으로 탐사한다.

저자에 따르면 중계무역항 베네치아는 시내의 소매상들이 도시민은 물론 해외 고객까지 상대할 정도로 상업이 발달했고 전문화됐다.

또 이탈리아 북부와 중부 전역은 시골 깊숙이 뻗은 도로와 운하,항구를 갖춘 대규모 혹은 중간 규모의 도시가 많아서 유럽의 다른 지역에 비해 도시화가 훨씬 더 빨리 진행되고 있었다. 작은 마을의 주민들이 농산물을 팔러 큰 시장이 있는 읍으로 몰려들었던 영국과 달리 이탈리아에서는 작고 외딴 시골이나 도시 공동체에 이미 상설 상점과 정규 시장이 들어서 있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16세기 토스카나 산간 마을인 알토파시오는 주민이 700명에 불과했지만 제화공 5명과 청과상 2명,도자기 상인 1명에 대장장이까지 있었다. 또 토스카나 지역 포피시에는 알토파시오보다 약간 크고 인구가 1450명에 불과했지만 16세기 말에 청과상 9명,빵집 두 곳,푸줏간 두 곳,약국 세 곳,포목점,이발사,재단사,제화공 등이 영업했을 정도였다.

저자는 이처럼 발달한 시장에서 르네상스 사람들이 언제,어디서,어떤 식으로 쇼핑을 즐겼는지 추적한다. 또 그들이 물건값은 어떻게 알아냈고,구입한 상품이 만족스럽지 못했을 때 반품은 가능했는지,적당한 값에 샀는지 바가지를 썼는지 등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다양한 자료를 인용하며 파헤친다. 아울러 시장참여자들의 은유와 고정관념 및 이들의 태도가 르네상스 시대 도시지리에 미친 영향,일시적인 장과 경매 · 복권,골동품과 면죄부 거래 등도 들여다본다.

1348년 흑사병이 창궐하면서 인구가 급감하고 임금이 오르자 생활수준이 향상됐다. 그러면서 1400년 이후 약 200년 동안 전반적으로 변화가 강조됐다. 특히 16세기 후반에는 전문화한 새로운 유형의 상점들이 생겨났고,이탈리아 전역의 여러 도시에서 특허가 쏟아지면서 다양한 종류의 신상품과 대체수입품을 제작,보급하기 시작했다.

가령 14세기 피렌체 식료품상 길드(동업자 조합)는 다른 가게를 둘러보는 고객에게 호객 행위를 금지하는 법령을 발표했다. 베니스의 산마르코 광장과 리알토의 판매점에서 빵을 파는 상인은 고객에게 소리치며 빵을 내밀 수 없었다. 특히 귀중품이나 희귀품 구매는 정적 속에서 이뤄져야 하는 게 철칙이었다. 거래하는 시간도 정해졌다. 1320년 이탈리아 북부 파비아에서는 모든 거래를 끝내야 한다고 알리는 저녁 종,선술집을 닫으라는 '포도주 종'까지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오면서 상거래 공간이 거리나 장터에서 편안한 상점 내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