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구조 개선 약정 체결 대상으로 선정된 현대그룹은 주채권 은행인 외환은행 주도의 약정 체결을 거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현대그룹은 지난 18일 주거래 은행을 외환은행에서 다른 은행으로 바꾸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현대가 연일 외환은행의 재무구조 개선 약정 체결 움직임에 대해 강도 높게 반발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현대,외환은행 못 믿겠다.

현대가 외환은행 주도의 재무구조 개선 약정 체결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주채권 은행에 대한 '배신감' 때문인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현대 측은 금융감독원보다 오히려 주채권 은행이 앞장서 재무구조 개선 약정 체결을 강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외환은행의 대출금 규모가 크지 않은 상황인데도 약정을 강행하고 있다는 점도 현대로선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현대의 외환은행 대출액 규모는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를 합쳐 1700억원 정도다. 반면 현대의 예금액은 2000억원이다. 대출금 상환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게 현대 측 얘기다. 회사 관계자는 "여신 규모가 크지 않은 데도 주채권 은행이 오히려 현대를 막다른 길로 몰고 있는 점을 이해할 수 없다"며 "이래서 무책임한 외국계 은행을 주거래 은행으로 둘 수 없다는 의견이 그룹 내부에서 터져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외환은행 주도의 약정 체결을 하지 않고 버티는 방안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현대가 약정 체결을 거부하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매각작업이 곧 시작될 현대건설의 향배 때문이다. 현대건설은 현대상선의 지분 8.3%를 갖고 있는 대주주 중 한 곳이다. 현대건설 매각은 다음 달부터 진행될 전망이다. 정책금융공사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대우건설 인수를 위한 자금을 조성하는 대로 현대건설 매각작업을 재개할 것"이라며 "6월 중에는 매각 작업에 나서 내년 초에는 새 주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운업 부채는 미래를 위한 투자'

재무개선 약정 대상 선정 과정에서 해운업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았다는 점도 큰 불만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대상선의 부채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불합리하다는 주장이다. 배를 살 때 자금 전액을 금융권에서 빌리는 해운업의 특성상 부채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이를 근거로 그룹 전체에 족쇄를 채웠다는 설명이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독일 최대 해운업체인 하팍 로이드사만 해도 지난 1분기 부채비율이 400%를 웃돌았다"며 "반면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은 284%로 글로벌 선사들과 비교해 오히려 낮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해운업체들이 빚을 지지 않으려면 선박을 빌려 써야 한다. 보통 중소 선사들이 이 같은 방법을 취한다. 하지만 배를 빌려 사용하다 보면 회사의 규모를 키우기 어렵고,시장 상황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게 된다. 요즘처럼 해운 시황이 좋을 경우 용선료가 급등해도 배를 빌려쓰는 해운업체 입장에선 이를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다. 글로벌 대형 선사마다 자기 배(사선)를 늘리는 이유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한 척을 사는 데 드는 비용이 보통 2000억원 정도인데,해운사들은 보통 배를 담보로 국내외 은행에서 20년 원리금 상환 조건으로 돈을 빌린다"며 "당연히 LNG선 몇 척만 사도 부채비율이 확 올라가게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해운업계에서는 부채란 미래를 위한 투자와 같은 말"이라고 했다.

현대는 재무구조 평가 과정에서 외환은행이 업황 전망,자금 조달력 등 비재무적 항목에 대해 지나치게 낮은 점수를 준 것으로 보고 있다. 회복세에 진입한 해운 시황,현대증권 등 금융 계열사들의 자금동원 능력 등을 무시한 채 작년 실적에 근거한 재무 상태만을 기계적으로 평가했다는 주장이다.

장창민/박동휘/이심기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