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과 러시아는 수교 20주년을 맞는다. 그동안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은 수교 초기의 미미한 수준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특히 금년 들어 양국 간 교역 및 투자협력이 지난해의 극심한 침체에서 벗어나 순조로운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 다행스럽다. 양국의 경제협력관계를 한 차원 높게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러시아 경제의 잠재력과 산업발전 방향에 맞는 '사업개발형 시장전략'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협력수준이 잠재력에 비해서는 크게 미흡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지난해 양국 교역은 100억달러로 우리나라 총 교역액(6865억달러)의 1.5%에 불과했고,러시아에 대한 투자는 4억3000만달러에 그쳐 베트남에 대한 투자(5억9000만달러)보다 적었다. 이 같은 미흡한 성과의 이면에는 러시아의 열악한 투자환경과 정책 일관성 결여 등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하지만,우리 측에도 경제협력 전략에서 보완돼야 할 몇 가지 사항이 있다.

우선 경제협력의 방향성 내지 지향성에 관한 문제다. 러시아는 석유 가스 등 풍부한 원자재 자체의 수출보다는 이들 원자재를 가공해 고용을 창출하고 고부가가치화하는 개발형 산업전략에 관심이 많다. 다행히 우리는 부존자원이 없는 가운데서도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제조업을 발전시켰고 많은 경험을 축적해왔다. 따라서 우리 업계는 러시아 경제가 필요로 하는 프로젝트를 개발해 시장을 창출해 가는 적극적인 사업개발형 전략을 추구해야겠다. 한국가스공사가 종합적인 프로젝트 구상을 통해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인 가즈프롬과 블라디보스토크에 건설하기로 협의 추진하고 있는 가스액화 및 화학플랜트 건이 좋은 예다.

둘째,상호 보완성의 원칙에 충실한 사업 전략을 펼쳐야겠다. 러시아는 국가재정을 자원수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갖고 있어,제조업 기반이 취약하고 원천기술의 상업화가 부진하며 기술활용도가 낮다. 우리의 제조업 노하우와 산업기술 협력이 절실한 이유다. 1990년대까지도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선진 산업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투자유치단 파견,기술인력 연수,퇴직기술자 초청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제 이 같은 노력을 역으로 러시아에 제공해,시장을 만들어가며 사업을 추진해야겠다.

셋째, 러시아 정부의 동방전략 추진에 보다 치밀한 대응이 필요하다. 극동 및 동부러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한 동방전략은,부존자원이 풍부함에도 그동안 개발에서 소외된 이 지역의 개발이 러시아의 미래에 크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에서 출발한다. 그 중심에는 국영기업인 트랜스네프트의 동시베리아 송유관 건설사업과 가즈프롬이 주도하는 러시아 통합가스개발계획(UGSS)이 있다. 극동 및 동부러시아 지역에 석유 · 가스 네트워크를 완성하고,러시아 에너지자원을 아 · 태 수출시장과 연결하고자 하는 야심찬 계획이다. 동시베리아의 유전과 극동지역의 사할린,차얀다,이르쿠츠크 등의 대형 가스전 개발이 추진되고,수송 네트워크 완성을 위한 대규모 배관 건설이 진행될 것이다. 2012년 APEC 정상회담의 블라디보스토크 개최가 매우 중요한 추진동력을 제공할 것이다. 기존의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민 · 관 합동의 치밀한 대응이 요구된다.

21세기는 한 · 중 · 일 시대라고 흔히 말하지만,우리에게 있어서는 극동 러시아지역을 제외한 동북아지역의 공동시장 구상은 전략적으로 문제가 있다. 가는 길이 어렵긴 하지만,결국 러시아를 포괄하는 한 · 중 · 일 · 러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산업구조,자원부존구조,교역상품구조 및 경제 발전단계를 종합 고려할 때,4개국 공동시장은 높은 상호보완성으로 시너지 창출과 함께 동북아 지역 안정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병호 <STX에너지 사장 / 한 · 러 경제협력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