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설치 공법 특허기술을 보유한 A사는 조경업체 B사 등으로부터 "기술사용료를 줄 테니 특허 사용을 허락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B사 등이 입찰하려는 모 지방자치단체 발주 분수공사에 A사의 특허기술 사용이 필수조건으로 지정됐기 때문이었다.

A사는 B사 등에 기술사용료 외에 "특허기술이 사용되지 않는 다른 공사에 대해서도 우리와 하도급 계약을 맺으라"는 조건을 덧붙여 특허사용을 허락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A사의 행위를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거래상대방에게 부당하게 불이익을 준 행위'로 판단,시정명령을 내렸다.

공정위가 특허 기업들의 시장지배적 행위에 대해 제동을 걸고 있다. 지난달부터 '지식재산권의 부당한 행사에 대한 심사지침'을 개정해 지재권 남용 행위를 중점 조사 중이다. 전문가들은 "특허권을 행사하려면 공정거래법과 심사지침부터 꼼꼼히 살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허 효율성 입증해야 제재 피해

현행 공정거래법에는 "정당한 지재권 행사는 법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고만 돼 있을 뿐 어떤 경우가 지재권 남용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 새로 시행된 심사지침에서는 지재권 행사로 인한 공정거래 저해효과가 산업 효율성 증대효과보다 크면 남용으로 간주해 제재토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김준범 공정위 시장감시총괄과장은 "특허권 행사의 효율성 증대효과는 기본적으로 특허기업이 입증해야 한다"며 "구체적으로 어떤 자료를 내야 하는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사업자 내부 비용 절감에 그치지 않고 소비자 가격 하락 등 국민경제 전반의 효율성 제고에 기여하는 내용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크게 △특허 실시허락 과정에서 부당하게 대가를 요구하거나 거절하는 행위 △특허풀(Patent Pool),상호실시허락 등을 통한 불공정거래 행위 △기술표준과 관련한 불공정거래 행위 △특허소송의 남용 및 분쟁과정의 부당한 합의 등을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보고 있다.

특허권 실시를 허락할 때는 통상적인 거래관행에 비춰 현저히 불합리한 수준의 실시료를 부과하거나 거래상대방에 따라 차별적으로 부과해서는 안 된다. 미국 퀄컴사는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이동통신 기술을 휴대전화 제조사에 라이선싱하면서 경쟁사의 모뎀칩을 사용하는 회사에는 차별적으로 높은 로열티를 부과하다 지난해 7월 공정위로부터 약 26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특허소송 남용해도 제재받는다

복수의 특허권자가 특허를 취합해 상호간 또는 제3자에게 공동으로 실시를 허락하는 특허풀도 공정거래법 위반이 될 소지가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오금석 변호사는 "특허풀을 구성한 사업자들이 'C사는 아시아,D사는 미국' 식으로 해당 상품의 판매지역까지 할당하거나 판매가를 결정하면 제재를 받게 된다"고 말했다.

특허기술의 기술표준 선정도 감시 대상이다. 기술표준은 기술 간 호환성을 높여주지만,독점성을 갖는 특허기술이 선정되면 공정거래저해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자들이 모여 기술표준을 선정할 때 특정 회사가 자사의 특허 존재를 숨긴 채 해당 기술이 선정되도록 한 다음 특허권을 주장하며 높은 실시료를 요구하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된다.

특허소송을 남용해도 공정거래법으로 제재받을 수 있다. 객관적으로 명백히 근거가 없거나 경쟁사의 사업활동을 방해하려는 목적으로 소송을 내는 경우다. 김준범 과장은 "지난해 처음으로 특허소송 남용 문제를 조사했는데 처벌 대상은 아니었다"며 "앞으로 소송 남용으로 조사받는 사례가 많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오금석 변호사는 " 공정거래법과 심사지침이 외국에 비해 광범위해 특허기업들이 위반 가능성을 면밀히 따져야 한다"며 "공정위도 전문가들과 함께 모호한 부분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