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엔 이상기후가 유난히 심술을 부렸다. 때아닌 춘설과 한파로 일조량이 크게 줄어든 탓에 농작물 피해가 컸다. 온도에 상관없이 꽃을 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해 첫 번째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실었다. 교육과학기술부 창의연구사업단에 소속된 안지훈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팀이다.

안 교수팀은 나아가 광합성량을 조절하는 원천기술을 확보해 향후 국가간 이산화탄소(??)배출권 거래나 기후 관련 협상에서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다소 야심찬 계획도 세워놨다. 연구진의 1차 목표는 식물이 온도에 둔감하게 하는 메커니즘 발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연구 대상 온도는 식물 개화 시기와 밀접하게 관련된 16~28도 사이다.

안 교수팀의 연구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들쑥날쑥한 날씨에 따른 농작물 피해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기술이 등장하게 된다.

◆마이크로 RNA로 개화시기 조절

연구진은 먼저 생명 현상의 기본 조절 도구인 마이크로(micro) RNA에 주목했다. mi RNA는 일반 RNA와 달리 핵산의 기본 단위인 뉴클레오티드 개수가 20개 안팎인 RNA다. DNA의 전사체인 RNA에 아미노산이 달라붙어 특정한 힘을 받으면 생명체의 기본인 단백질이 되는데,RNA는 수천개 이상의 뉴클레오티드를 갖는 이중가닥 구조다. 그런데 mi RNA는 단가닥이며 크기도 작다. 이 RNA는 최근 석학들이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생명과학 분야의 '핫이슈'다.

안지훈 고려대 교수는 "mi RNA 구조가 점진적으로 변하면서 타깃 유전자의 발현도 바뀌고 생명 현상이 조절된다는 게 연구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mi RNA는 타깃 유전자 RNA에 달라붙어 해당 유전자의 발현을 촉진하거나 방해한다. 이것이 RNA 간섭(interference)이다. 연구진은 mi RNA-156이 개화를 촉진하는 SPL-3라는 타깃 유전자에 달라붙어 개화를 방해하는 것을 밝혀냈다.

쉽게 말해 온도가 높아지면 mi RNA-156이 많아지면서 SPL-3가 많이 소실되므로 개화가 늦어진다. 반대로 온도가 낮아지면 mi RNA-156이 줄어들면서 SPL-3가 적게 소실되므로 개화가 빨라진다. 이 둘 간의 관계를 조절할 수만 있다면 온도에 상관없이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얘기다.

◆시리즈 논문의 종착지는 광합성

연구진은 이 같은 연구 결과를 중심으로 2차 논문 작성에 한창이며 올해 8~9월께 완성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연구진은 mi RNA-172가 개화와 관련됐다는 논문을 써 최근 영국 저명 학술지 '뉴클레익 에시즈 리서치(Nucleic Acids Research)'에 실었다.

연구진은 나아가 mi RNA-163,mi RNA-169,mi RNA-398,mi RNA-399 도 온도 및 개화에 관련이 있음을 어느 정도 확인하고 정밀하게 메커니즘을 입증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는 3차 논문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mi RNA-156과 mi RNA-172를 산업화할 수 있는 연구도 진행할 예정이다. 안 교수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스프레이 형태의 개화 촉진제 등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스프레이에 mi RNA를 나노 입자 형태로 담아 꽃에 뿌려주면 개화시기가 느려질 수 있고,반대로 상보적 서열의 mi RNA를 뿌리면 개화시기를 빠르게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의 최종 목표는 광합성 조작에 있다. 광합성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를 없애는 유일한 자연 메커니즘이다.

그러나 식물은 온도가 올라가면 광합성량을 줄이는 특성이 있다. 결국 현재 지구는 고도 산업화에 따른 지구온난화로 광합성량이 계속 줄고,이는 다시 ?? 증가로 이어지고 그 결과 지구온난화가 반복되는 악순환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광합성도 개화 시기 과정과 마찬가지로 타깃 유전자와 관련된 mi RNA를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안 교수는 "광합성 저하량의 1%만 줄여도 1년치 국내 ?? 생산량 전부를 없앨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며 "광합성 선순환을 통해 식물 생태계를 정상화시킬 수 있는 원천 기술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