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더비와 크리스티보다 치열할 정도로 불꽃 튀는 경매가 진행되는 곳이 뉴욕에 있다. 흔히 봄 축제 기간 이뤄지는 고등학교 학부모회가 주최하는 연례 경매다. 다른 경매장에 나오는 물건과 다른 점은 무형의 아이템이 대부분이란 것.또 돈이 아무리 많은 부자라도 다른 곳에서 쉽게 사기 어려운 것들이란 점도 특징이다.

10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고등학교 학부모회 경매장 분위기를 전하면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항목은 유력 회사 혹은 기관의 '인턴십'이라고 보도했다. 다양한 인턴 경험이 있으면 아이비리그 등 명문 대학교에 입학할 때 유리한 점수를 받을 수 있어서다. 미국에서는 대학생들의 인턴 취업난 못지않게 고등학생들도 좋은 인턴 자리를 얻기 위해 전쟁을 치르다시피 하고 있다. 그래서 학부모들은 고등학생 자녀의 인턴십을 확보하기 위해 수천 달러를 선뜻 내놓는다.

맨해튼 웨스트 89가에 있는 드와이트스쿨에서는 고급 화장품 회사인 '에스티 로더'의 머린 케이스 사장이 기부한 '바비 브라운(화장품 회사)'의 인턴십 확보권을 최저가 6000달러에 경매에 올렸다. 시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인턴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권리를 경매에 올린 것이다. 경험도 쌓고 주당 400달러의 보수도 있는 자리라고 학교 측은 전했다.

사무직 근로자의 범죄 예방을 전문으로 하는 로펌인 '휴스,허버드앤드리드'의 파트너인 에드워드 리틀 변호사가 내놓은 인턴십은 2500달러부터 경매가 이뤄졌다. 이곳 인턴은 변호사들의 업무를 도우면서 시간당 10달러의 임금을 받게 된다.

컬럼비아경영대의 사회기업연구소장인 레이 호튼 교수가 기부한 연구조사 인턴십은 시초가 2000달러부터 경매가 시작됐다. 이 자리는 임금은 없지만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임금이 문제가 아니다. 맨해튼 서북부에 있는 앤더슨스쿨은 구글과 유엔에서 하는 일을 잠깐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놓고 경매가 이뤄지기도 했다.

인턴십 외에 유명 인사와 식사 자리 주선 등 경매에 나오는 대상은 다양하다. 피오렐로 라가디아 고등학교에서는 한 학부모가 자녀가 화가 겸 사진가로 활동하는 척 클로스씨와 소호에 있는 사보이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할 권리를 2400달러에 사들였다. 이 학교 4학년생의 부모로 경매를 주선한 데브라 웰스씨는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다른 데서는 살 수 없는 귀중한 것들"이라고 말했다.

학부모회는 경매를 통해 마련한 기금을 대학 진학 준비반 지원이나 교육 환경 개선 등에 쓰도록 기부한다. 경매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10만달러 이상을 학교에 기부하는 경우도 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