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첫 주는 서울 강남 일대에 삼성생명 청약 광풍이 몰아친 한 주로 기록될 전망이다. 돈 좀 있다는 부자들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뭉칫돈을 싸들고 증권사 객장 앞에 가 줄을 섰다.

은행 프라이빗뱅커(PB)를 졸라 사모펀드(PEF)를 급조,기관투자가 물량으로 청약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 같은 광풍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뒤 허탈감을 느끼는 부자들도 많다. 기껏 수억~수십억원을 동원해 청약을 넣었는데 돌아온 주식은 고작 수십~수백주에 지나지 않는다. 돌아온 증거금을 투자할 만한 곳도 마땅치 않다. 삼성생명 청약에 참여했던 이들 부자의 속내와 앞으로의 투자 향방을 시중은행 PB를 통해 들여다 봤다.

◆강남 부자들,묻지마 청약 열풍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사는 이근영씨(48 · 여)는 이번 삼성생명 공모주 청약에 총 33억원을 쐈다. 처음에는 PB와 상담 결과 16억원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그런데 경쟁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얘기에 청약 증거금을 33억원으로 늘렸다. 여기저기 은행마다 흩어져 있던 돈을 끌어다 모았다. 현금 동원능력이 55억원 정도인 그로서도 상당히 부담스런 금액이었다. 그런데 청약이 끝나고 배정받은 주식은 고작 850주.공모가격을 곱해도 1억원이 채 못 됐다. 이씨는 "고생한 것에 비해 주식을 많이 못 받긴 했지만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그래도 이게 어디냐"면서 "우리나라 대표회사의 주식인 만큼 1년 이상 장기 보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생명 일반 공모주 주관사였던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 3~4일 이틀 동안 진행됐던 청약을 최종 집계한 결과 총 888만7484주 모집에 3억6080만주가 신청,40.60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청약 증거금으로만 19조8444억원이 몰렸다. 이는 1999년 KT&G(옛 담배인삼공사)의 11조5746억원을 넘어선 역대 최대 규모다.

고득성 SC제일은행 삼성PB센터 부장은 이와 관련, "솔직히 공모가가 좀 비싸게 결정된 것 같아 이 정도로 열기가 뜨거울 줄은 몰랐는데 거의 '묻지마 청약'이 돼 버렸다"며 "그만큼 시중에 갈 곳 없는 자금이 많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김일수 씨티 프라이빗뱅크 수석팀장도 "이번 삼성생명 청약은 2004년 평균 328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7조원이 넘는 돈이 몰렸던 용산 시티파크를 방불케 했다"며 "그만큼 강남 부자들 사이에서 삼성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전했다. 그는 또 "삼성생명 주식은 사실상 수익성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부자들의 '애장품' 수집의 차원으로 이해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승안 우리은행 투체어스 강남센터 부지점장은 "강남 부자들은 철저하게 본인이 컨트롤할 수 있는 투자 상품에 돈을 투자한다"며 "본인이 알지 못하는 리스크가 있는 상품에는 선뜻 손을 대지 않고 손을 대더라도 여러 사람과 공동 투자하는 방식으로 위험을 분산하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청약 환불금,부동자금으로 돌아올 것

삼성생명 일반 공모주 청약에 무려 20조원이 몰렸지만 실제 주식가액은 1조원이 채 못 된다. 나머지 19조원은 그대로 다시 투자자들에게 반환된다. 이 돈은 과연 어디로 흘러갈까.

대부분의 PB들은 삼성생명 청약에 참여한 강남 부자들과 상담한 결과 은행권 단기금융상품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했다.

박관일 신한은행 압구정PB센터 수석팀장은 "어차피 대부분 강남 부자들이 여유 자금으로 청약에 나섰기 때문에 증거금에서 반환되는 돈 역시 머니마켓펀드(MMF),수시입출금식예금(MMDA) 등 은행권 단기성 금융상품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박승안 부지점장도 "곧 청약에 들어갈 만도도 삼성생명만큼은 아니지만 부자들의 관심이 높은 편"이라며 "공모주 청약을 위해 언제든지 돈을 빼낼 수 있는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에 자금이 몰릴 것"으로 예상했다.

정상영 하나은행 선릉역 골드클럽 PB팀장도 "올 들어 좋은 시장이 거의 없다"면서 "그나마 강남 부자들이 가장 유망하다고 보는 시장이 주식시장인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정 팀장은 "현재 금융상품이 지수연동예금(ELD),주가연계증권(ELS) 등으로 진화하고 있는 데다 청약 환불금을 잡기 위한 증권사나 은행들의 마케팅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이런 퓨전 금융상품으로도 상당수 자금이 들어올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이호기/정재형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