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산업분야별로 기업이 선호하는 인재를 배출하는 대학들이 속속 드러남에 따라 현장밀착형 교육과정을 마련하려는 대학 간 경쟁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기업들은 산업계 관점의 대학 평가에서 높은 순위를 받은 대학 출신자를 신입사원으로 우대한다는 방침이다.

◆화학공학 한양대,정밀화학 고대 최우수

산업계 관점의 대학 평가는 대학의 교육 과정과 성과가 산업현장 요구에 얼마나 들어맞는지 측정하는 것으로 기업체 임원과 교육과정 전문가 등이 분야별 직무 수행에 필요한 역량과 필수 교과목 등을 직접 분석한다. 대학 졸업자들이 바로 산업현장에 투입될 수 있도록 대학에서 충분한 교육을 시키도록 하자는 취지다. 교육과학기술부 및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5단체와 함께 평가를 진행하는 이유다.

올해는 석유화학,화장품,제약 등 3개 분야에서 평가가 이뤄졌다. 평가에 참여한 32개 기업은 LG화학 제일모직 호남석유화학 한화석유화학 아모레퍼시픽 애경산업 코오롱제약 종근당 등 국내 업종대표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에 취직한 졸업생이 많은 20여개 대학이 평가대상이다. 상대적으로 졸업자의 기업체 취업이 적은 서울대는 평가에서 제외됐다. 평가 대상에 포함된 대학들은 그 자체로 기업들이 선호하는 대학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석유화학 분야에서는 한양대가 종합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부문별로는 △교육과정 일치도는 중앙대 충남대 한양대 △교육과정의 현장적용성은 영남대 울산대 △교육성과는 중앙대 △산업체 기여도는 고려대 연세대 한양대가 매우 우수한 곳으로 평가받았다. 정밀화학인 화장품과 제약 분야에서는 고려대가 각각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처음 발표된 산업계 관점의 대학평가에서는 자동차(성균관대 1위),건설 설계 · 엔지니어링(한양대),건설 시공(연세대),은행(서강대),보험 · 증권(고려대) 등 7개 분야에서 평가가 이뤄졌다. 평가결과가 발표된 이후 해당 대학 졸업자들은 취업에 다소 유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대 관계자는 "산업계 관점의 대학 평가와 맞물려 기업과 연계한 업무중심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교협은 앞으로 정보통신 전자 일반기계 철강 섬유 문화콘텐츠 등으로 분야를 넓히고 평가 대학도 확대할 예정이다.

◆대학교육과 산업현장 간 괴리 여전


기업들은 대학교육이 여전히 산업현장과 차이가 크다고 보면서도 이번 평가를 통해 개선될 것으로 기대했다. 박종일 LG화학 ABS/EP 공장장은 "기업들은 현장에 강한 엔지니어를 원하며 화공실습이나 실험을 많이 해줄 것을 요구하는데 대학에서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며 "공장을 짓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화학공학은 물론 토목 기계 운영소프트웨어 등 종합적 학문을 익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공장장은 그러나 "일부 대학이 현장에서 필요한 커리큘럼을 짜서 잘 가르치고 있다"고 소개했다.

산업계의 평가는 교육과정의 개편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길영식 한국콜마 생명과학연구소장은 "인재양성센터를 운영하거나 특성화교육을 시키는 대학 출신 신입사원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사내 교육기간이 짧아 기업들이 선호하고 있다"며 "현장실습과 인턴십 등을 활발히 운영하는 대학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대학과의 정기적 미팅이나 학술심포지엄 개최 등을 통해 교류를 더욱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업계는 나아가 △산업분야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교육과정 운영 △산업계 요구에 맞춘 수업내용 및 학습방법 개선 △업계 인사를 활용한 현장중심 실용교육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한 산학 교류 활성화 등을 제시했다. 또 이번 평가 결과를 전 대학에 배포해 교육과정 개선 자료로 활용하기로 했다.

일부 기업들은 평가에 그치지 않고 맞춤형 교육과정을 직접 가르치고 있다. 에쓰오일은 고려대 화학공학과에 개설된 '지식과 경영' 과목에 임원과 팀장 14명이 강사로 참여해 석유산업의 경영전략과 재무,인사,장치산업의 안전기준 등 산업현장이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운 각종 지식을 교육하고 있다. 공장견학과 팀 프로젝트 발표도 교육과정에 포함돼 있다. 안상렬 에쓰오일 과장은 "공장에서 촉매를 직접 보면서 반응공학 등을 배울 수 있다"며 "현장에서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내용을 가르치고 있어 학생들의 호응도 높다"고 소개했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