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쌓일수록 깊어가는 '韓銀의 고민'
외환보유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말 외환보유액이 사상 최대인 2788억7000만달러로 집계됐다고 4일 발표했다. 이는 한 달 전보다 65억4000만달러,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말과 비교하면 무려 776억5000만달러 증가한 규모다.

◆탄탄해진 외환시장 안전판

외환보유액 증가는 금융위기가 안정되면서 해외 차입이 활발해졌고 경상수지가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보유액 운용수익이 늘어나고 최근 외환당국이 원 · 달러 환율 급락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인 것도 한몫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외환보유액 증가는 1997년 말 외환위기와 2008년 미국의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몰아친 신용경색으로 극심한 '달러 기근'을 겪은 한국 경제에는 기분 좋은 소식이다. 갑작스런 해외자본 유출에 대비할 수 있는 한국 경제의 '안전판'이 그만큼 탄탄해졌다.

◆외환보유 비용도 급증

달러 쌓일수록 깊어가는 '韓銀의 고민'
문제는 외환보유액을 쌓으려면 막대한 경제적 비용이 수반된다는 점이다. 외환보유액이 많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한은 내부에선 "(외환보유액 증가가) 꼭 좋다고 볼 수만은 없다"는 신중론이 많다. 외환보유액을 쌓으려면 한은이 통화안정증권(통안채)을,기획재정부는 외국환평형기금(외평채)을 발행해야 한다. 한은이 달러를 매입하면 시중에 원화가 그만큼 풀리기 때문에 한국은행은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막기 위해 통안채를 발행한다. 외평채는 재정부가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발행하는 채권이다.

통안채 발행잔액은 지난 3월 말 기준 164조8000억원,외평채 발행잔액은 작년 말 기준 104조9357억원에 달한다. 2008년 말과 비교하면 통안채의 경우 37조9000억원,외평채는 10조9529억원 늘었다.

지난해 통안채와 외평채 이자 지급액은 총 11조2143억원(통안채 6조4279억원,외평채 4조7864억원)에 달했다. 물론 통안채와 외평채 발행으로 쌓인 외환보유액을 미국 국채 등 선진국 채권에 투자해 수익을 낼 수 있지만 이것만으론 이자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 통안채나 외평채 발행금리가 미국 국채 등에 비해 높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은이 주로 발행하는 2년 만기 통안채 금리는 현재 연 3.6%가량이지만 만기가 같은 미국 국채 금리는 연 1% 수준이다. 또 만기 5년짜리 외평채 금리는 벤치마크(기준) 대상인 미국 국채보다 현재 0.66%포인트가량 높다. 만약 통안채와 외평채 발행으로 사모은 달러를 전액 미국 국채에 투자한다면 연간 5조원가량의 운용손실이 발생한다.

외환보유액을 쌓는 과정에서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는 셈이다. 이는 나중에 국채 발행 등을 통해 메워야 해 결국 국민 부담이다. 한은 관계자는 "경제에 '공짜점심'이 없듯 외환보유액 증가도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외환보유액 충분한가

외환보유액이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지만 더 쌓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연구원은 금융위기 재발 방지를 위해 외환보유액을 3000억달러 이상으로 확충해야 한다고 제시했고 현대경제연구원은 3400억달러를 적정 외환보유액으로 봤다.

이에 대해 한은은 '노 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현재 외환보유액이 많다거나 적다고 언급하는 순간 외환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며 "다만 현재 외환보유액 수준은 긴급상황시 외환 지급 수요 충당에 부족하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