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 매표소에서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 2~3분쯤 걸었을까. 숲 어귀 어딘가에서 트럼펫과 트럼본,호른,튜바 등 관악기의 불협화음이 들려온다. 나무로 둘러싸인 조그마한 무대 위에서 음색을 조율하던 금관악기 연주자들이 마침내 흘러간 팝송을 한 곡 뽑아내기 시작한다. 연주가 끝날 때마다 무대 앞에 줄 지어 놓아 둔 의자들은 청중들로 빠르게 채워져 간다.

파릇한 나뭇잎에 내린 햇살을 즐기는 듯,눈을 감고 맑은 공기와 음악을 동시에 들이마시는 등산객들의 모습이 편안하게 보인다. 무릎에 앉은 어린 딸아이에게 귀엣말을 속삭이는 아빠,어머니가 탄 휠체어를 밀고 천천히 선율을 따라 무대 쪽으로 다가서는 부부….지난 17일 춘천시 강촌에서 만난 '2010 구곡폭포 토요 숲속공연'의 풍경이다.

◆자연 속 하모니에 빠지다

강촌 구곡폭포에서는 다음 달 8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숲속공연이 열린다. 지난주 시작된 첫 공연은 금관악기 연주팀 '강원 브라스앙상블'과 아카펠라 그룹 'A-Five'의 무대였다. 남성 목소리만으로 완벽한 반주와 노래가 완성되자 객석에선 탄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한 시간이 넘는 음악회를 끝까지 지켜보며 음악에 빠져들었다. 진행자가 "낯이 익은데 지난해 오셨던 분도 계신가요?"라고 묻자 몇몇이 손을 번쩍 든다. 어느새 고정 팬이 생긴 모양이다.

2008년 가을 시작된 '구곡폭포 토요 숲속공연'은 춘천시 시설관리공단이 주최하고 춘천국유림관리소와 코레일 등이 후원하는 지역 문화행사다. 작년 봄 · 가을 공연을 거쳐 올해 공연은 네 번째다. 구곡폭포 매표소에서 입장료(어른 및 대학생 1600원,학생 1000원,어린이 600원)를 내고 들어오면 공연 관람은 무료다.

24일에는 마임배우 강정균의 공연과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강원도 내 직장인 밴드 '초이스'의 연주회가 열린다. 남성중창단 '보이스포맨'과 이화여대 출신들로 구성된 젊은 여성 국악그룹 '한달음애'(5월1일),마술 전문 공연팀 '매직포커스'와 국악 실내악팀 '강원국악예술단'(5월8일)의 무대가 잇달아 펼쳐질 예정이다.

음악회 무대에서 오솔길을 따라 15분가량 올라가면 50m 높이의 구곡폭포가 나온다. 아홉 굽이를 돌아 내려오는 폭포가 일으키는 물보라가 시원하다. 등산객의 안전을 위해 폭포 가까이에 밧줄을 설치해 놓은 점은 다소 아쉽지만 폭포수와 주변의 기암은 보는 이의 가슴을 탁 트이게 해준다. 봉화산과 검봉산의 등산코스,산속 자연 촌락인 문배마을까지 모두 둘러보면 당일 관광 코스로는 손색이 없다. 구곡폭포는 서울~춘천 간 고속도로의 강촌IC에서 빠져 나가거나 46번 국도를 이용해 갈 수 있다.

◆'봄 · 봄'의 현장 김유정문학촌

춘천 나들이에 나선 김에 김유정문학촌(춘천시 신동면 증3리)도 한번쯤 들러볼 만하다. 1937년 스물아홉 나이에 요절한 김유정의 소설 '봄 · 봄''동백꽃''금따는 콩밭''만무방''산골' 등은 모두 김유정문학촌이 있는 실레마을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20리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닿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딱한 떡시루같다 하여 동명(洞名)을 실레라 부른다. '

김유정은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에서 실레마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기차를 타면 강촌역과 남춘천역 사이의 김유정역에 내려 걸어서 3분,남춘천역에선 자동차로 10분이 걸린다. 구곡폭포에서도 차로 2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입장료는 무료다.

김유정문학촌은 작가의 생가 터에 복원해 놓은 전통가옥과 인공 연못,정자,김유정 동상 등으로 아담하게 꾸며져 있다. 한 바퀴 쓱 둘러보는 데 채 5분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김유정기념관은 절대 빼놓지 말아야 한다. 근대 한국 농촌의 애환과 민초들의 생명력이 어떻게 소설로 잉태됐는지 일목요연하게 잘 설명하고 있어 어른은 물론 자녀들에게도 재미있는 곳이다. 김유정의 생애와 연인들,폐결핵으로 죽기 전까지 몰두했던 작품,1930년대에 발간된 잡지들,김유정이 후기에 합류한 당대 순수문학 작가모임 구인회(九人會)에 관한 자료들도 흥미롭다.

김유정문학촌 뜰에 서서 금병산 자락에 안긴 실레마을 풍경을 바라보니 소설과 그대로 어우러진다. 금병산 아래 잣나무숲 뒤쪽은 '동백꽃'의 배경이다. 잦은 결석으로 연희전문학교에서 제적된 김유정이 고향에 내려와 움막을 짓고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쳤다는 야학 터도 인근에 있다.

마을 한가운데 잣나무숲에는 실존인물이었던 소설 '봄 · 봄'의 배참봉 댁 마름 봉필이 영감 집이 나온다. 점순이와 성례는 안 시켜주고 일만 부려먹은 데 불만을 품은 주인공이 장인과 드잡이를 하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김유정이 코다리찌개로 술을 마시던 주막 터,산골 나그네(들병이)가 남편을 숨겨 두었던 팔미천 물레방앗간 터('산골 나그네')에서도 그의 삶과 문학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춘천=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