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 때 처음 대종사님을 뵈었던 곳이 바로 여기,이 방입니다. 지금 제가 앉은 자리에 벽을 등지고 앉아 계셨는데 얼굴에서 광채가 훤하게 비쳐서 한 눈에 '아,저 분이 생불(生佛)님이구나' 생각했지요. "

지난 19일 오후 전북 익산 신룡동 원불교 중앙총부 구내의 종법실(宗法室).

원불교의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1891~1943년)가 생전에 기거했던 방에 앉은 문산(文山) 김정용 종사(85)는 이렇게 회고했다.

자리를 함께 한 아타원(阿陀圓) 전팔근 종사(81 · 여)도 "나는 총부 구내에서 태어나 대종사님 무릎에서 자랐다. 그 분의 선견(先見)과 개혁정신이 아니었으면 지금 우리가 어떻게 여기 있겠느냐"며 감회에 젖었다.

전남 영광에서 1916년 4월 28일 큰 깨달음(大覺)을 이룬 소태산은 1924년 활동의 중심을 현재 중앙총부가 있는 익산(옛 이리)으로 옮겨 원불교 교단의 문을 열었다. 문산 종사와 아타원 종사는 익산 총부 초기에 태어나 소태산 슬하에서 직접 배우고 자란 인물들.2000명 가까운 원불교 교무(출가교역자) 가운데 소태산을 직접 친견한 제자는 20명가량에 불과하다. 그나마 대부분 건강이 좋지 않아 이들처럼 소태산의 삶과 가르침을 직접 증언할 수 있는 제자는 5~6명뿐이라고 한다.

문산 종사는 18세까지 대종사를 직접 모셨고,아타원 종사는 원불교 초창기 여성 교무로서 해외 교화에 앞장선 원불교 역사의 산증인들이다.

문산 종사는 "당시 원불교에 대한 일제의 압박이 매우 심해서 일본 순사가 매일 저녁 몰래 담을 넘어 들어와 툇마루 밑에 숨어서 대종사님이 혹시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는지,독립자금을 대주는지 감시했다"며 "우리는 자율방범대를 가장해 짐짓 툇마루 밑을 작대기로 훑고 다니곤 했다"고 전했다.

또 "목소리가 얼마나 우렁찬지 대각전에서 법문을 하면 50m밖에서도 뚜렷이 들릴 정도였다"고 말했다.

경기여고와 서울대 사범대 영문과를 졸업한 아타원 종사는 "원불교가 앞으로 세계를 오갈 테니 지금부터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며 외국어 공부를 강조했던 분도 대종사였다"며 "초기부터 남녀동권(同權)을 강조하셨고 교단제도도 혁신적으로 정비하는 등 선견이 뛰어났던 분"이라고 설명했다.

"여고에 다닐 때 대종사께서 '네가 배우고 있는 것은 과학이다. 그러나 과학만으로는 살 수 없다. 도학을 바탕으로 과학을 해야 세상을 위해 크게 쓸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해요. 한번은 학교 성적표를 보여드렸는데 '너 혼자만 공부하려고 애쓰면 안 된다. 너보다 못한 친구를 네가 아는 만큼 끌어올리도록 마음을 써야 진짜 큰 사람이 된다'고 강조하셨지요. "

원불교의 최대 명절인 대각개교절(28일)을 앞두고 기자들을 만난 이들은 "대종사님은 20세기를 구원할 구세불로 세상에 오신 분"이라며 "욕심으로 인한 탐진치(貪瞋痴,탐욕 · 분노 ·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행복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자"고 강조했다.

익산=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