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드스키 광장 등에 수십만명 인파 운집
희생자 애도..폴란드 단합 소원


지난주 러시아 스몰렌스크 인근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한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 부부 등 희생자 96명을 추모하는 대규모 행사가 17일 수도 바르샤바에서 열렸다.

이날 정오(이하 현지시각) 시내 중심가 필수드스키 광장에서 2분간의 사이렌과 함께 시작된 추모식에는 전후 최대 참사로 희생된 고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폴란드 전역에서 찾아온 수십만 명의 인파로 가득했다.

쌍둥이 형인 야로슬라브 카친스키 '법과 정의당(PiS)' 당수와 외동딸 마르타 등 카친스키 대통령 유족, 대통령 권한대행인 보르니슬라프 코모로프스키 하원의장, 도널드 투스크 총리 등 정부 주요인사,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 등은 귀빈석에 자리했다.

추모 행사는 사이렌에 이어 카친스키 대통령 부부를 시작으로 연단 뒤에 사진이 걸린 희생자 96명 전원을 한명 한명 소개하는 순서가 이어졌다.

코모로프스키 하원의장은 "지금은 우리가 하나가 돼야 할 때"라며 "앞으로도 이 분위기를 이어가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정치적으로 싸운다면 단지 폴란드를 위해서만 싸우자"고 단결을 호소했다.

카친스키 대통령의 절친한 친구이자 정치적 동지인 마치에이 워핀스키 대통령 비서실장은 "카친스키 대통령은 상당히 솔직한 분이었고, 단순하게 표현하는 사람이었다"고 회고하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슬픔을 느낀다"고 애도했다.

선글라스를 낀 카친스키 대통령의 딸 마르타는 행사 도중 가끔 눈물을 훔치곤 했다.

투스크 총리는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개선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있다"면서 "지금 (폴란드인들이 단결하는) 모습과 느낌을 역사적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참극에 희생된 '카틴 숲 학살 사건' 유가족협회 대표의 딸은 기도문 형식으로 "이번 사건이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희생자들을 추도한 뒤 "이번 비극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들의 조사가 이어진 뒤 폴란드 주교단은 광장에서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미사를 공동 집전했다.

폴란드 국민들은 미사가 진행되는 내내 기도를 함께 올리며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이날 행사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시민들이 몰려들었으며 일부는 추모식 참석에 앞서 부근에 있는 카친스키 대통령 부부의 유해가 안치된 대통령 궁을 찾아 조문했다.

전역군인, 경찰, 소방관, 보이스카우트, 걸스카우트, 탄광 노동자 등이 제복을 입고 단체로 모여 행사를 기다리는 모습도 보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폴란드 소년병 복장 차림을 한 학생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행사를 시작하는 사이렌이 울리자 모든 차량과 행인들은 그 자리에 멈춰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국가재앙으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갓난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아내와 함께 추모식에 참석한 부아제이 포트스탑체 씨는 "비극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역사적으로 특별한 날"이라며 "정치인들이 이번 비극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표현했다.

또 타데우시 디몹스키(60) 씨는 "지도자를 잃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곳에 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우리는 이번 비극을 잘 이겨내고 있고 폴란드를 하나로 묶어줄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전에는 그렇지 않던 젊은이들이 애국심에 사로잡히고 있다.

폴란드가 국가를 더 사랑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추모식이 열린 이날 현재 아직 21명의 희생자 유해가 신원확인 절차가 끝나지 않아 본국으로 송환되지 않았다.

폴란드 독립운동의 아버지 요제프 필수드스키 장군의 이름을 딴 필수드스키 광장은 곳은 1979년 폴란드 출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그리고 2006년 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가 미사를 집전했던 유서깊은 장소이다.

밀려든 인파는 필수드스키 광장과 나란히 한 사스키 공원을 메웠고, 교통이 통제된 주변 도로에도 추모 미사를 함께 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바르샤바 시는 시내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무료로 개방하는 한편 이날 밤까지 주류 판매를 금지하는 등 추모 분위기를 엄숙하게 유지하게 위한 조치를 취했다.

앞서 오전 8시56분에는 꼭 일주일 전의 비행기 추락 순간에 맞춰 교회의 종소리와 비상 사이렌 소리가 시내 전역에 울려 퍼졌다.

추모식이 끝난 뒤 카친스키 대통령 부부의 관은 대통령 궁에서 조금 떨어진 성 요한 성당으로 운구됐고, 카지미에쉬 니츠 바르샤바 대주교의 집전 아래 위령미사가 진행됐다.

성 요한 성당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스승인 비신스키 바르샤바 대주교의 유해가 안치된 곳이다.

카친스키 대통령 부부의 장례식은 세계 약 100개국의 조문단이 참석한 가운데 18일 오후 2시 남부 고도(古都) 크라코프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이들의 유해는 유서깊은 바벨성 성당에 안치된다.

한편, 유력 일간지 제치포스폴리티타는 호외를 통해 카친스키 대통령의 일생을 자세히 전했으며 측근인 리사르드 부가이 대통령 경제보좌관은 "좋은 의도를 지녔지만, 표현방법에서 너무 솔직해 외로운 정치가였다"고 회고했다.

또 폴란드 뉴스전문채널인 TVN24는 한국과 일본의 조문단이 아이슬란드 화산재 확산에 따른 유럽 '항공대란'으로 카친스키 대통령 부부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게 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카친스키 대통령 부부를 비롯해 폴란드 고위 인사 96명을 태운 폴란드 정부 전용기는 지난 10일 '카틴 숲 학살사건' 70주년 추모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중 모스크바 서부 스몰렌스크 공항 활주로 부근에서 추락,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바르샤바연합뉴스) 황정우 특파원 jungw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