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의 저잣거리에 대해 역사학자 사마천은 "사람들이 흘리는 땀이 비가 되어 내릴 정도"라고 묘사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 무렵 한단의 인구가 100만명은 족히 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오늘날 허베이(河北)성의 주요 도시인 한단은 빌딩이 즐비한 현대식 도시로 바뀌었지만 그래도 그 옛날의 모습을 제법 많이 간직하고 있는 편이다. 한단이 수도였을 당시 조나라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강대국 진(秦)의 위협 때문에 늘 비상이었다. 그나마 염파라는 역전의 노장과 인상여라는 걸출한 외교가이자 뛰어난 정치가의 활약으로 진나라의 야욕을 저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두 사람 사이가 한때 껄끄러웠다. 어느 날 혜성처럼 나타난 인상여의 승승장구를 못마땅하게 여긴 염파의 시기와 질투 때문이었다. 그래서 인상여는 가급적 염파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출근하다가도 염파의 마차를 보면 얼른 마차를 돌렸다. 나중에 인상여의 진심을 알게 된 염파는 자신의 잘못을 깨끗하게 인정했다. 이로써 두 사람은 서로 목숨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을 '문경지교(刎頸之交)'라는 최고의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당시 인상여가 염파를 피해 마차를 돌렸다는 골목인 '회차항(回車巷)'이 지금도 좁은 골목 그대로 남아 있다. 전국시대 최대 도시 한단의 뒷골목과 오늘날 한단시의 뒷골목은 그렇게 역사를 매개로 절묘하게 조우하고 있다. 도시의 매력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초한지 강의》 《삼국지 강의》 등을 통해 한국 독자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중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인기 방송인 이중톈의 《독성기(讀城記)》는 "도시는 거대하게 펼쳐진 책"이라는 저자의 말 그대로 '도시 읽기'다. 이미 소개된 《중국 남녀 엿보기》 《중국인을 말하다》와 함께 3부작처럼 읽어도 좋을 이 책에는 저자의 현란한 지적 편력이 집중적으로 드러나 있다.

도시의 외관으로 시작해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하고,그곳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옮겨가는 세련된 서술 방법이 돋보인다. 저자가 고른 7개 도시를 각각의 특성에 맞게 이름 붙인 것도 인상적이다. 성으로 에워싸인 베이징은 '성(城)'으로,바닷가 작은 도시에서 중국 최대 도시로 성장한 상하이는 '탄(灘)'으로,거대한 시장으로 변모한 광저우는 '시(市)'로,아름다운 항구도시인 샤먼은 '섬(島)'으로,하늘이 내린 마을이란 뜻의 천부(天府)라는 별명을 가진 청두는 '부(府)'로,3개의 큰 구역으로 이루어진 우한은 '삼진(三鎭)'으로,1979년 특구로 지정된 선전은 '특구(特區)'로 구분해 한눈에 그 특성을 알아보게 한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도시 간의 끊임없는 비교다. 이를 테면 "베이징의 풍격이 당당한 기개라면 상하이의 또 다른 풍격은 광활함이다. 베이징의 대범함은 독보적인 위치와 그로 인해 생겨난 천하를 보는 넓은 안목과 포용성에서 오는 것이다. 상하이의 광활함은 그곳이 양쯔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부분에 위치한,방어선이 없는 도시이기 때문이다"와 같은 대목이 페이지가 멀다 하고 등장한다.

이런 대목에서는 문득 '베이징과 상하이를 서울과 부산으로 바꾸어 놓았을 때 우리는 과연 이런 비교와 대조가 가능하겠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우리 도시들에 자기만의 개성이 넘치는 이런 화려한 수식이 가능하겠는가.

이 책은 우리에게 '도시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절로 던지게 만든다. 내가 살고 있는 고장의 특성과 개성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고,다른 고장과는 무엇이 다른지 선뜻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과연 우리에게 역사와 문화,그리고 사람이 한데 어우러진,그래서 활기에 넘치는 미래를 창조해가는 역동성을 충분히 느끼게 하는 그런 도시가 있는가. 왜 우리는 갈수록 도시를 피해 도시로부터 가능하면 더 멀리 떨어진 곳으로 꾸역꾸역 숨어들려고만 하는가.

중국은 5000년이란 시간 속에서 83개 왕조에 96개의 도읍을 경험했다. 한 통계에 따르면 666개의 도시가 있다. 당장은 그 숫자와 다양함에 입이 벌어지지만,이 책을 읽고 나면 개성도 없고,있는 개성마저 말살당한 채 그저 덕지덕지 화장만 하고 있는 우리 도시들의 모습에 화까지 난다.

도시의 어두운 면은 애써 피한 채 자화자찬으로 일관하고 있는 저자의 현란한 글솜씨가 다소 거슬리기는 하지만 세련된 고급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것은 물론 중국의 또 다른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 도시 여행을 한번 떠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김영수 < '성찰-김영수의 사기 경영학'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