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먹으면 환각 증상이 일어나는 갈황색 미치광이버섯에는 알락애버섯벌레,밑빠진벌레류 등이 찾아와 버섯살을 맛나게 먹고는 알을 낳고,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버섯 속을 돌아다니며 버섯 밥을 먹으며 성장한다. 그런데 버섯에 곤충이 살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포식성 곤충 풍뎅이붙이류가 나타나 배부르게 식사한다. 도대체 버섯살이 곤충들은 버섯을 어떻게 찾는 걸까. '

정부희 이화여대 에코과학연구소 연구원(48)은 《곤충의 밥상》에서 이렇게 곤충들의 식생활을 묘사한다. 버섯살이 곤충이 버섯을 잘 찾아내는 것은 버섯이 내뿜은 냄새를 좇아오기 때문이다. 특히 썩기 시작한 버섯에는 통통해진 애벌레들이 많다는 것을 포식성 곤충은 잘 알고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지구상의 곤충은 알려진 종수만 100만종에 육박할 만큼 실로 다양하다. 그만큼 먹이도 다양하다. 풀도 먹고,나무도 먹고,똥이나 시체도 먹고,버섯도 먹는다. 어떤 종류의 먹이를 먹느냐에 따라 생김새며 행동방식,한살이 등이 다양하다. 저자가 곤충들의 다양한 삶을 이해하는 중심코드로 식생활을 정한 것은 이런 까닭이다.

저자는 "곤충에게 숲 속,풀숲은 더없이 잘 차려진 훌륭한 밥상"이라며 먹이에 따라 풀,나무,버섯,시체와 똥,곤충을 먹는 곤충으로 나눠 그 다양한 삶의 현장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아직 추운 이른 봄 곤충들은 왜 앉은부채 꽃을 찾을까''곤충마다 먹이식물이 다른 이유는''왕파리매가 날면서 먹이를 낚아채는 이유는' 등의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해결하며 곤충들의 생활사에 접근한다.

도토리거위벌레 암컷은 딱딱한 껍질로 둘러싸인 도토리에 알을 낳는다. 어떻게 껍질을 뚫는 것일까. 도토리거위벌레의 기다란 주둥이에는 톱니바퀴처럼 이빨이 빙 둘러 나 있기 때문이다. 키가 큰 참나무에 달린 도토리에 알을 낳은 도토리거위벌레는 도토리가 달린 가지를 땅에 떨어뜨린다. 왜 그럴까. 도토리 속을 파 먹고 자란 애벌레가 땅 속으로 들어가 번데기가 되기 때문이다.

파리와 이름도,생김새도 비슷하지만 날아다니며 곤충을 사냥하는 모습이 맹금류인 매와 꼭 닮았다 해서 이름이 붙여진 왕파리매.이 녀석은 잘 발달된 겹눈,비행에 방해되지 않는 짧은 더듬이,튼튼한 가슴,억센 털로 덮인 강인한 다리 등 사냥꾼의 요건을 모두 갖췄다. 녀석은 잡아온 먹이의 몸속에 뾰족한 주둥이를 꽂고 소화효소를 집어넣어 먹이의 속살을 죽처럼 걸쭉하게 만든 다음 빨아 먹는다.

특히 버섯살이 곤충인 거저리는 저자의 전공 분야다. 높다란 나무에 걸려 있는 말굽버섯에는 노란 털다발이 꽃술처럼 달려 있는 뿔을 가진 도깨비거저리가 산다. 애벌레들은 딱딱한 말굽버섯에 층층이 구멍을 뚫어놓고 실컷 먹고 자란다. 또 번데기를 거쳐 우화한 어른벌레는 버섯 밖으로 나와 버섯 표면을 갉아먹는다. 저자는 "삼색도장버섯,구름버섯,줄버섯 등 숲속의 버섯 속에는 인간 모르게 작은 곤충들의 만찬이 매일같이 벌어진다"고 소개한다.

저자는 영문학도 출신으로 부도와 탑 등 문화유산에 흠뻑 빠져 살다 불혹에야 생물학 공부를 시작해 거저리 생태연구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문학공부 덕인지 감칠맛 나는 글솜씨가 곤충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일품이다.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는 추천사에서 이 책을 '파브르 곤충기'에 빗대 '정부희 곤충기'라고 불렀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