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앞으로 어느 분야에서 일하든 금융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아래서 금융을 모르고는 살 수 없습니다. 글로벌 인재가 되려면 금융을 알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전문성도 갖춰야 합니다. "

황건호 금융투자협회 회장은 15일 서울 신수동 서강대 신경영관에서 '자본시장과 함께 한 인생'이란 주제의 CEO(최고경영자) 릴레이 특강을 통해 약 300명의 학생들에게 이같이 강조했다. 자본주의 체제에 살면서 금융 지식을 갖추고 금융 현상을 이해할 수 있어야 대학생들도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는 얘기다.

황 회장은 "금융산업은 은행권과 자본시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은행은 여 · 수신 기능을 통해 금융시스템의 근간으로서 역할을 하고,자본시장은 리스크 분산 차원에서 금융산업의 기본 인프라로 기능하며 상호발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우리나라 가계 자산은 부동산과 예금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어 효율적인 자산운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실물자산과 금융자산 비중은 8 대 2로 미국(4 대 6)에 비해 부동산 등 실물자산이 너무 많고,금융자산 중 은행 예금 비중은 45.4%로 미국(14.4%)의 3배에 달한다.

황 회장은 자본시장에 대해 "노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자본시장은 다양한 금융상품을 운용하는 자산운용시장으로서 기능이 커지고 있다"며 "직접투자보다는 간접투자,단기투자보다는 장기투자를 잘 활용하면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산운용시장을 바탕으로 자본시장의 한 축인 기업금융 기능도 강화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대학생들에게 무엇보다 "프로로서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기 분야에서 프로페셔널한 전문가로 남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전문성을 갖추는 것은 개인이 사회에 기여하는 지름길이란 설명이다. "글로벌 시대에는 어떤 분야든 전문성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실패한다"고 말했다.

대학가는 물론 한국 사회의 문제점으로 꼽히는 '한 방향 쏠림현상'에 대한 쓴소리도 던졌다. 그는 "남이 하면 벼랑인지도 모르고 마구마구 쫓아가는 사람이 많다"며 "사회가 선진화되려면 가치관의 다원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 구성원이 모두 한방향으로 움직이는 쏠림현상이 많아지면 결국 사회 비용이 매우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황 회장은 자신의 인생 경험을 토대로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과감하게 선택하는 도전의식도 강조했다. '인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는 역사학자 토인비의 말을 인용,학창시절 은행권이 아닌 증권업계를 택한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 놓았다. 그는 "남들이 하는 일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이 보기에도 좋고, 그런 사람이 사회에 많이 기여한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여학생들을 향해 "증권 자산운용 선물 투자자문 신탁회사 등 자본시장에는 여성들도 많이 활약하고 있다"며 "자본시장에는 선택의 기회가 많다"고 소개했다. 또 "금융업종은 특히 엄격한 윤리의식이 요구되는 분야"라며 "직업윤리를 등한시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단기 업적주의에 매몰돼 정도에서 벗어나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지만 이를 이겨내는 것도 프로가 갖춰야 할 덕목이란 이야기다.

최근 자본시장과 관련,황 회장은 "한국 경제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며 "한국 자본시장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돼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코스피지수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웠던 2008년 말에 비해 올 3월 말까지 50.5% 상승했다. 이는 미국(23.7%) 영국(28.1%) 일본(25.2%)의 두 배에 달한다.

미국 리먼 브러더스 파산사태 이후 벌어진 글로벌 금융위기를 '반면 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금융,특히 자본시장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돼야 하며 금융시스템을 선진화시키고 국제경쟁력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그는 역설했다.

황 회장은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이니셔티브를 쥘 수 있는 위치는 아니지만 국제상황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각종 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면서 적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분야에서도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가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를 위해 1997년 외환위기 경험을 살리고 금융개혁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황 회장은 한국 증시의 국제화를 이룬 주역이다. 증권업계 '1세대 국제통'인 그는 1984년 한국 최초의 해외거래 한국물인 코리아펀드를 설립했다. 1999년에는 한국통신(현 KT)의 정부 지분 28%(25억달러)를 주식예탁증서(DR) 형태로 해외에 매각,외환위기 이후 한국 기업의 해외 자금 조달에 물꼬를 텄다.

대우증권에 재직할 당시 증권업계에선 처음으로 '국제부'를 만들고 '경제연구소'도 개설했다. 대우그룹 구조조정은 물론 대우증권의 삼보증권 인수작업에도 참여했다. 부동산 뮤추얼펀드격인 '리츠(REITs)' 상품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기도 했다.

최명수 기자 m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