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차 고지 점령전에 나섰다. 앞서 의료보험개혁 법안을 처리한 기세를 몰아 금융감독개혁 법안도 조속히 통과시키기 위한 시동을 걸었다. 공화당과 월가의 거센 방어선을 뚫는 게 과제다.

오바마 대통령은 14일 백악관으로 민주 · 공화 양당의 상 · 하원 지도부를 초청해 금융감독개혁 법안을 하루빨리 처리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위험한 대형 투자를 해놓고선 일이 잘못될 경우 납세자들의 구제금융을 기대하는,그런 식의 비규제 시장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며 초당적인 지지를 촉구했다.

하원은 지난해 금융감독개혁 입법 독자안을 통과시켰으나 상원이 발목을 잡고 있다. 상원은 금융위원회가 가결한 독자안을 이르면 다음 주께,늦어도 이달 말까지 본회의 표결에 부친다는 일정을 세웠지만 공화당이 가로막고 있다. 상원이 통과시킨 법안을 하원이 그대로 받아 민주당이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인 의보개혁 법안 처리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상원에서 민주당은 공화당의 의사진행방해(필리버스터)를 차단할 수 있는 슈퍼의석(60석)에서 한 석이 모자란다. 지난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 보궐선거에서 패한 결과다. 상원 공화당 지도부가 만만치 않게 버티는 배경이기도 하다.

공화당의 미치 매코넬 상원 원내대표는 이날 회동을 끝낸 뒤 "민주당이 주도한 법안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월가에 구제금융을 지원하게 될 안"이라고 비난했다. 같은 당의 존 베이너 하원 원내대표는 "상원 법안은 대형 은행들만 보호해 중소형 은행들에는 피해를 줄 것"이라고 가세했다.

공화당 지도부가 물고 늘어지는 것은 상원 법안에 포함된 '대마불사' 관행을 종식시키는 항목이다. 이들은 500억달러의 부실 금융 정리펀드를 사전에 만들자는 안 자체가 또다시 구제금융을 퍼붓는 것이라고 본다. '질서 있게 정리한다'는 명분 아래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개입을 강화하는 내용도 마뜩지 않다.

'구제금융을 보장받을 수 있는 개혁 법안이라면 월가 대형 은행들이 왜 반대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매코넬 원내대표는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공화당 의원들이 월가의 대형 은행들을 대변하느냐는 질문에도 그는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만 대답했다. 상원안을 작성한 민주당의 크리스토퍼 도드 금융위원장은 이런 공화당을 맹공격했다. "공화당의 비난은 허튼소리이며 정략일 뿐"이라고 민주당이 맞받아치면서 양당 사이의 분위기는 악화됐다.

월가 대형 은행들은 개혁 법안 중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하는 은행세 부과안에 강력히 반대한다. 납세자들의 구제금융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은행들로부터 향후 10년간 900억달러의 '금융위기 책임 수수료'를 걷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는 "은행세 부과는 징벌적 조세"라고 반발하고 있다. 영국 독일 프랑스 정부가 오바마 정권이 확보한 원군이다.

이처럼 공화당과 월가의 반발이 크지만 의보개혁 법안에 비해 금융감독개혁 법안의 처리는 수월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11월 의회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어 상원의 공화당 의원들도 무작정 반대하기는 부담스럽다. 금융위기의 진앙지 월가를 향한 지역구 유권자들의 분노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워싱턴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의 더글러스 엘리엇 연구원은 "의보개혁 법안과 달리 대다수 미국민들은 (월가를 개혁해) 광범위한 변화가 이뤄지길 원한다"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도 상원에서 모자라는 한 석을 공화당에서 끌어오면 된다는 계산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백악관 경제팀이 공화당 중도파 의원들을 주요 공략 루트로 잡아 설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공화당의 스콧 브라운 상원의원을 접촉할 계획이며,로렌스 서머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의장이 올림피아 스노우 공화당 상원의원과 회동할 것으로 전해졌다.

브라운 의원은 매사추세츠주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눌러 민주당의 슈퍼의석을 깨뜨린 주인공이어서 아이러니다. 그는 공식적으로 법안 지지를 표명하지 않았으나 "문제가 있는 곳은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공화당에서 법안을 지지할 가능성이 큰 백기사는 이 밖에도 저드 그레그,밥 코커 의원 등 서너 명이 더 있다고 미 언론들은 보도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