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개별 금융회사 조사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한국은행법 개정안이 상임위 간 '기싸움'으로 장기 미제로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은과 금융위,두 기관을 대변하는 재정위와 정무위의 대립이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개정안이 4월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면 상임위원장과 상임위원 등이 대거 교체되는 6월 국회에선 사실상 처리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 정무위는 재정위의 한국은행법 개정안 추진에 반발해 지난 2월 한은의 조사권 부여에 제동을 거는 내용을 담은 금융위원회 설치법 개정안을 상정했고 현재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법사위에는 내용이 상충되는 '카운터 법안' 두 개가 각각 재정위와 정무위로부터 올라와 있는 것.특히 김영선 정무위원장은 유선호 법사위원장에게 한은법 처리문제에 대해 "정무위와 협의 없이 처리하지 말아 달라"는 공문까지 보내놓은 상태다.

이에 민주당 소속인 유 위원장은 "국회가 4월 한 번만 열리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계속해서 논의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회 관계자들은 한은법 개정안이 4월에 처리되지 못하면 더 이상 논의할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가장 속이 타는 쪽은 역시 한은이다. 김중수 신임 한은 총재는 지난 1일 취임 이후 한은법 개정안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진 않았지만 개정안을 지지하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금융안정을 위한 중앙은행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관련되는 제반 제도와 관행을 정비해야 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과제다"라는 내용의 취임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 총재가 '법 개정'이란 용어 대신 '제도와 관행 정비'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한은의 설립목적에 '금융안정'을 추가하고 이를 수행하기 위해선 제한적인 수준에서나마 금융회사에 대한 단독조사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드러냈다는 것이 한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반면 금융위원회는 한은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한은의 역할은 통화정책을 통한 물가안정이며,금융안정은 금융위와 금융감독원 등 금융 감독당국의 몫이라는게 금융위의 일관된 주장이다. 때문에 4월 법사위 등 국회에 출석한다면 강한 어조로 반대 입장을 개진할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 역시 지난해 9월 한은 금융위 금감원 등이 맺은 정보공유 및 공동검사 양해각서(MOU)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며 글로벌 금융위기가 완전히 해소되면 그때 가서 심도있게 논의해보자는 입장이다.

박신영/박준동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