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군 송산단지의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 들어서면 은빛 돔 건축물 다섯 동이 첫눈에 들어온다. 각 건물의 지붕 지름은 130m,높이는 65m로 흡사 돔형 야구장을 떠올리게 한다. 세계 어떤 제철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원형 시설물의 용도는? 답은 원료 저장고다. 제철의 핵심 원료인 철광석을 이곳에 보관한다. 돔 건물 옆에는 길쭉한 선형 건물 4개가 나란히 붙어 있다. 여기에는 유연탄을 쌓아둔다. 원료를 실내에 보관하는 '밀폐형 원료 저장고'를 갖춘 제철소는 세계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원료 하역에서 생산까지 '먼지 제로'


지금까지 제철소들은 야적장에 철광석 유연탄 등 원료를 쌓아놓고 퍼다 쓰는 탓에 '비산 먼지'를 유출시킨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먼지가 덜 날리도록 천막 형태의 가림막을 치거나 야적장 주변에 나무를 심긴 했으나,오염물질이 하천이나 대기로 유입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지는 못했다.

현대제철의 새 시스템은 원료를 실내에 보관해 이 같은 문제점을 극복했다. 브라질 호주 등에서 들여온 철광석은 당진제철소 앞 부두에서 밀폐형 컨테이너에 실려 원료창고까지 옮겨진다. 제철소 내 원료 이동도 밀폐 컨베이어를 통해 이뤄진다.

물론 다른 제철소에 없는 시설을 도입하다 보니 막대한 추가 비용이 들었다. 당진제철소 건설 과정에서 투입된 환경투자비는 5300억원으로 전체 투자비 6조2300억원의 8.5%에 달했다. 그 대가로 당진제철소는 세계 철강사에 '녹색 제철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와 함께 '그린 제철소'의 전형으로 떠올랐다.

◆MK가 첫 착공 지시를 내린 것도 환경설비


현대제철이 엄청난 비용을 감수하고 친환경 제철소를 짓게 된 데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 정 회장이 제철소 부지 조성공사를 시작한 뒤 가장 먼저 착공 지시를 내린 곳이 밀폐형 원료 저장고다. 그는 2006년 10월 기공식에서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기존 공장에 환경설비를 설치하는 수준의 사후적 관리가 아니라 설계 단계에서 최신 환경설비를 도입하는 사전적 관리로 세계 최고 수준의 친환경 일관제철소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친환경+원가 절감의 '일석이조'

원료 저장고에는 철광석 190만t,석탄 80만t,부원료 25만t 등 약 45일분의 제철 원료를 보관할 수 있다. 야적장과 비교하면 철광석을 단위 면적당 2배 더 쌓을 수 있다. 원료 보관에 드는 부지가 절반으로 줄어들어 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오명석 현대제철 산업관리본부장은 "바람이나 비로 인해 원료의 자연감소분이 거의 없고 변질도 막을 수 있다"며 "원료 보관시설을 밀폐형으로 지으면 환경 보호뿐만 아니라 원가 절감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초의 '자원순환형'그룹

세계 자동차 메이커 중 제철소를 소유해 수직계열화를 이룬 곳은 없다. 따라서 현대차그룹은 당진 일관제철소 완공으로 세계 최초의 '자원순환형' 그룹으로 탄생했다. 현대제철이 생산한 열연강판으로 현대하이스코가 자동차용 냉연강판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현대 · 기아차가 자동차를 제조한다. 반대로 폐차된 자동차 고철은 현대제철의 전기로 원료로 재활용되고,여기에서 철근이나 H형강과 같은 건설 자재가 생산되는 완벽한 의미의 '자원 순환 고리'가 갖춰진다.

윤성민 기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