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진은숙씨(49)는 3년 전 독일의 친구 결혼식에서 잊지 못할 '소리'와 다시 만났다. 결혼 축하곡으로 연주된 중국 생황 연주자 우웨이의 선율이었다. 어릴 때 들었던 바로 그 소리가 마치 수많은 '악보'를 내미는 듯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오케스트라 수장인 사이먼 래틀이 '21세기를 이끌어갈 작곡가'로 꼽을 만큼 유명한 그였지만,생황 곡을 쓰려고 마음만 먹었다가 계속 미뤄왔던 터였다. 사실 생황은 한번에 여러 음을 낼 수 있어 배음(한 음 이외에 다른 여러 음이 섞이는 것)을 자주 쓰는 그의 곡 스타일과 잘 어울린다. 그러나 동양 악기로 곡을 쓰는 것은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주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마침 일본 산토리 음악재단이 40주년을 맞아 곡을 부탁해오자 그는 곧바로 오선지를 폈고,본격적인 생황 협주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그의 첫 동양 전통악기 연주곡인 생황 협주곡 '슈'였다.

그는 이 곡을 오는 1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의 '아르스 노바'프로그램 중 하나로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다. '아르스 노바'는 새로운 예술이라는 뜻으로 현대음악의 최신 경향을 소개해온 연주회 시리즈.그가 2006년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상임작곡가를 맡은 후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슈'는 아시아 초연작이기도 하다. 지난해 8월 일본에서 공연한 것을 다시 손질해 재구성한 것.진씨는 "작년에 여러 곡을 쓰느라 완성도가 떨어져 클라이맥스를 추가하고 사물놀이 느낌의 생동감을 더 넣었다"며 "곡을 쓰고 나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종종 수정하곤 하는데 무엇보다 수준미달인 곡들이 세계 연주회장을 돌아다니면서 저를 망신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며 웃었다.

이번 공연 프로그램의 주제는 '동과 서'.윤이상의 '예악'과 요하네스 쇨호른의 '6-1/물',천치강의 '오행',유아사 조지의 '사원에서의 시선Ⅱ' 등이 연주된다.

특히 서막을 장식하는 '예악'과 마지막 곡인 '슈'가 생황을 화음으로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1982년 '예악'을 처음 접했다는 진씨는 이 곡이 서양음악의 어법을 쓰면서도 한국의 전통음악 선율을 성공적으로 풀어낸 윤이상의 수작이라고 설명했다.

이 곡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 초연곡이다. '아르스 노바'는 '초연 연주회'라 불릴 정도로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현대음악을 발굴해 소개하고 있다.

그는 "수준이 떨어져도 유명 작곡가의 곡을 넣어 구색을 맞추는 연주회가 많지만 '아르스 노바'는 곡의 질만 보고 선곡한다"며 "다양성을 위해서는 소수를 위한 문화의 가치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