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는 온천왕국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온천이 많은 곳이다. 용출량 1위의 벳푸와 젊고 캐주얼한 유후인이 섬 동북부 오이타현에 있다. 좀 더 아래로 내려가면 구로카와온천으로 알려진 구마모토현과 검은모래찜질온천이 유명한 가고시마현으로 이어진다. 웬만한 온천통이 아니고서는 섬 서북부의 사가현을 그냥 지나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사가현의 온천은 좀 별난 데가 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걷던 산책길에서 온 마음을 사로잡는 고즈넉한 찻집을 발견했을 때의 느낌을 주는 온천이라고나 할까.

Take1 피부에 좋은 미인온천

사가현 온천의 주인공은 우레시노온천이다. 1200년 전인 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온천이다. 상처를 입은 학이 이곳의 온천물에 다리를 담그니 상처가 깨끗이 나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상처가 다 나은 학이 '우레시이'(기쁘다) 하고 외쳤다고 해서 지명이 유래됐다고 한다.

우레시노온천의 자랑은 '미인온천'으로 불릴 정도로 좋다는 수질이다. 탄산수소나트륨을 주성분으로 하는 온천물은 고형성분이 많이 함유돼서인지 묽은 젤 같은 느낌이다. 온천을 하고 나면 금세 피부가 미끌미끌해지는 게 중독성이 있다. 온천 후에는 온몸의 피부가 한꺼풀 벗겨지는 듯한 시원한 느낌이 든다. 일본 중앙온천연구소와 저명한 온천평론가인 후지타 사토시가 꼽은 '피부에 좋은 일본 3대 온천'에도 선정됐다.

강을 따라 늘어선 전통료칸도 격조 높다. 일왕이 머물렀다는 온천호텔 '와타야벳소'를 비롯, 우레시노의 명물인 녹찻잎을 가득 띄운 감각적인 녹차탕으로 인기몰이를 하는 '와라쿠엔',가족적인 분위기의 소박한 맛이 자랑인 '다카사고'에 이르기까지 40여채의 전통료칸을 선택할 수 있다.

우레시노온천은 입으로도 즐길 수 있다. 우레시노 온천수는 일본에서도 몇 안 되는 음용 가능한 웰빙 온천수다. 이 온천수로 만든 우레시노 온천순두부도 명물로 꼽힌다. 우레시노 지역의 료칸을 비롯해 어디서든 맛볼 수 있지만 JR버스 우레시노온천버스센터 인근에 자리한 '소우안요코초'를 원조 집으로 꼽는다. 증조할아버지대에 처음 두부집을 운영했는데 당시 두부를 온천수에 담가두었더니 딱딱한 두부가 부드러워졌고,온천수와 함께 끓이자 두부의 담백함이 배어나 지금의 명물요리가 탄생하게 됐다고 한다. 온천순두부 맛이 깔끔하다. 부드러운 순두부와 순두부에서 배어나온 뽀얀 국물이 식욕을 자극한다. 탄력이 남아있는 우리네 순두부와는 달리 입안에 넣는 순간 두유처럼 사르르 녹아내린다.

Take2 애니메이션 배경된 온천마을

규슈의 온천이라면 구로카와란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구마모토현의 북쪽 아소산과 오이타현이 만나는 경계에 자리한 구로카와온천은 한국인들이 그리는 가장 이상적인 일본온천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구로카와온천은 에도시대부터 이어져온 온천이지만 깊은 산속에 자리한 덕에 옛 온천의 모습과 자연을 그대로 간직해온 곳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구로카와온천은 마을 전체가 하나의 온천리조트처럼 구성돼 있다는 게 특징.28채의 온천여관이 강줄기를 따라 위치해 있는데 검은색으로 통일된 온천료칸 건물과 거리가 마치 온천테마파크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준다. 환락가나 현대식 고층 온천호텔이 들어선 다른 유명 온천관광지와 느낌이 다르다.

구로카와온천은 다양한 스타일의 온천욕을 한 곳에서 할 수 있는 점에서도 즐겁다. 자신이 짐을 푼 온천료칸뿐만 아니라 온천마을 내에 자리한 모든 온천료칸의 온천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이용방법도 간단하다. 1200엔짜리 입욕패를 구입하면 온천마을 내 3개소의 온천을 골라 자유롭게 온천욕을 할 수 있다.

오이타현의 유후인도 구로카와온천 못지 않게 유명한 온천마을이다. 온천마을 거리를 따라 미술관,고급 레스토랑,케이크전문점 등이 이어져 있어 하루 종일 걸으며 구경해도 피곤한 줄 모른다. 특히 여성들이 좋아하며 연인들을 위한 최고의 데이트 장소로도 꼽힌다. 거리 뒤로 이어진 고즈넉한 풍치도 일품이다. 일본 최고의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꼽히는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마을을 여행하고 자신의 만화영화 배경을 그렸다고 한다. 실제로 '이웃집 토토로'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두 만화영화의 배경이 유후인이라고 한다. 동네 선물가게에 토토로 인형이 유독 많은 이유다. 세계적인 명감독이 반한 풍경은 과연 무엇인지 찾아보는 것에서도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