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찍으러 와요"…색동옷 갈아입은 고궁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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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봄꽃맞이
홍화문 입구엔 매실.앵두 마중, 담장따라 산수유.진달래 잔치
꽃샘 추위로 개화 늦었지만, 봄비 많아 색깔은 더 고와
홍화문 입구엔 매실.앵두 마중, 담장따라 산수유.진달래 잔치
꽃샘 추위로 개화 늦었지만, 봄비 많아 색깔은 더 고와
2일 점심시간에 찾은 창경궁.왕의 침전으로 쓰였던 경춘전 뒤편 화계(花階)에는 꽃줄기 없이 가지에 붙어 있는 노오란 꽃들이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약 3m 높이의 나무에선 입보다 꽃이 먼저 피어난다. 서울 시내 궁궐에서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이가 바로 창덕궁 관람지와 이곳 경춘전 인근의 생강나무 꽃이다.
대개 3월 중순이면 피어나는 생강나무 꽃은 예년보다 열흘가량 지각했다. 지난달 말에야 모습을 드러낸 것.창경궁에서는 생강나무 꽃과 산수유가 핀 후에야 비로소 진달래와 미선나무,매실나무(매화),앵두나무,철쭉이 뒤를 잇는 봄꽃 향연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지난달 10일 문화재청과 기상청은 올해 봄꽃 개화 시기를 평년보다 5일 정도 빠를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잦은 봄비(눈)와 쌀쌀한 기온으로 인해 서울과 수도권에선 꽃이 찾아오는 시기가 4월로 늦어져 버렸다. 말 그대로 꽃을 시샘해 다시 찾아온다는 '꽃샘추위'의 심술이다.
흐드러지게 만개한 꽃 정취를 즐기기엔 다소 이르지만 그래도 봄은 봄이다.
창경궁은 조선 후기 왕실가족의 생활공간으로 쓰이던 곳이다. 성종이 1484년 세 명의 대비인 정희왕후 윤씨,덕종의 비였던 소혜왕후 한씨,예종의 계비 안순황후 한씨를 모시기 위해 창덕궁 동쪽에 세운,효심이 깃든 궁궐이다. 공주와 후궁들도 거처해 자연스럽게 내전이 발달했고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꽃나무가 많이 심어졌다. 봄 경치도 아기자기하고 여성스러운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이유다.
창경궁 봄 경치의 백미는 정문인 홍화문을 들어서자마자 맞닥뜨리는 옥천교 어귀다. 매실나무와 앵두나무,자두나무가 한곳에 모여 꽃잔치가 흐드러진다. 올해 개화시기가 10~15일께로 전망되는 매화를 시작으로 자두나무꽃(12~18일),앵두나무꽃(15~30일) 순이다. 매화는 꽃이 처음 핀 이후 약 일주일간 가지마다 피고지고를 반복하는 때가 절정이기 때문에 4월 중순이면 최상의 자태를 뽐낼 전망이다.
기대감을 남겨둔 채 궁의 맨 오른쪽 담장을 따라 대온실 쪽으로 걸어가노라니 일찌감치 산수유와 진달래가 마중을 나왔다. 산딸나무와 미선나무,병아리꽃나무에도 몽우리가 생겼다. 온실로 가는 길에 꽃은 아니지만 백송(白松)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백송은 어릴 때는 초록색이 깃든 푸른 빛을 띠다가 나이가 들수록 차츰 흰 얼룩무늬가 많아진다. 조선시대 중국 베이징에 사신으로 간 관리들이 귀국할 때 솔방울을 가져와 퍼뜨린 것으로,생장이 매우 느리고 번식이 어려워 쉽게 볼 수 없다.
온실 옆 춘당지는 임금이 경작하던 권농장(勸農場)이라는 논을 일제가 연못으로 바꾼 곳이다. 춘당지를 한 바퀴 돌아 팔각칠층석탑과 성종의 태반을 넣은 항아리와 석물인 태실 입구를 지나면 인근의 진달래가 더욱 붉은 꽃잎을 피워내고 있다. 때 이른 진달래를 만나니 더욱 반갑다.
좀 더 걸어가면 경춘전과 환경전이 내려다 보이는 자경전 터가 나오는데 성인 무릎 높이의 키에서 하얀색과 자주빛이 섞여 있는 미선나무가 아름답다. 자경전은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멀리 앞쪽으로 아버지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이 보이도록 지었다는 대비의 침전이다. 지금은 사라지고 대신 화단이 자리잡고 있다.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나란히 선 통명전(왕비 침전)과 양화당을 지나 정조가 태어난 경춘전,숭문당 등 여러 전각이 잇달아 서 있다. 이 곳 뒤편으로 자리한 화계가 봄꽃들의 집결지다. 매실나무 다음으로 살구나무(15일),산옥매(30일),철쭉(4월말~5월 초순) 순으로 피어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궁의 가장 왼쪽 궐내각서 지역은 진달래동산인데,오는 10~20일 절정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이만희 창경궁 관리소장은 "창경궁은 미복원 지역이 많아 전통수종과 자생화를 특히 많이 심어놨다"며 "지난 겨울이 무척 추웠던 데다 봄비가 많이 왔기 때문에 올해 봄꽃들은 더 색깔이 고울 것"이라고 말했다.
창경궁 대온실에서는 11일까지 창경궁의 꽃 경치를 담은 사진전이 열린다. 온실 내 다양한 자생식물과 함께 자생식물화단에서 매발톱이나 세잎양지꽃,섬초롱꽃 등을 구경하는 것이 좋다. 자녀들과 함께 찾는다면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열리는 온실문화학교에 참여해 보자.직접 초화류를 심어보고 새참도 먹을 수 있다. 비용은 입장료 포함 1인당 2500원.
이 밖에 경복궁 홍례문 어구와 창덕궁 낙선재(매화),경복궁 경회루지와 덕수궁 대한문(벚나무),경복궁 자경전(살구나무),경복궁 아미산과 창덕궁 대조전(앵두나무),덕수궁 함녕전(모란) 등도 고궁의 정취와 봄꽃을 함께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곳이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
대개 3월 중순이면 피어나는 생강나무 꽃은 예년보다 열흘가량 지각했다. 지난달 말에야 모습을 드러낸 것.창경궁에서는 생강나무 꽃과 산수유가 핀 후에야 비로소 진달래와 미선나무,매실나무(매화),앵두나무,철쭉이 뒤를 잇는 봄꽃 향연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지난달 10일 문화재청과 기상청은 올해 봄꽃 개화 시기를 평년보다 5일 정도 빠를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잦은 봄비(눈)와 쌀쌀한 기온으로 인해 서울과 수도권에선 꽃이 찾아오는 시기가 4월로 늦어져 버렸다. 말 그대로 꽃을 시샘해 다시 찾아온다는 '꽃샘추위'의 심술이다.
흐드러지게 만개한 꽃 정취를 즐기기엔 다소 이르지만 그래도 봄은 봄이다.
창경궁은 조선 후기 왕실가족의 생활공간으로 쓰이던 곳이다. 성종이 1484년 세 명의 대비인 정희왕후 윤씨,덕종의 비였던 소혜왕후 한씨,예종의 계비 안순황후 한씨를 모시기 위해 창덕궁 동쪽에 세운,효심이 깃든 궁궐이다. 공주와 후궁들도 거처해 자연스럽게 내전이 발달했고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꽃나무가 많이 심어졌다. 봄 경치도 아기자기하고 여성스러운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이유다.
창경궁 봄 경치의 백미는 정문인 홍화문을 들어서자마자 맞닥뜨리는 옥천교 어귀다. 매실나무와 앵두나무,자두나무가 한곳에 모여 꽃잔치가 흐드러진다. 올해 개화시기가 10~15일께로 전망되는 매화를 시작으로 자두나무꽃(12~18일),앵두나무꽃(15~30일) 순이다. 매화는 꽃이 처음 핀 이후 약 일주일간 가지마다 피고지고를 반복하는 때가 절정이기 때문에 4월 중순이면 최상의 자태를 뽐낼 전망이다.
기대감을 남겨둔 채 궁의 맨 오른쪽 담장을 따라 대온실 쪽으로 걸어가노라니 일찌감치 산수유와 진달래가 마중을 나왔다. 산딸나무와 미선나무,병아리꽃나무에도 몽우리가 생겼다. 온실로 가는 길에 꽃은 아니지만 백송(白松)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백송은 어릴 때는 초록색이 깃든 푸른 빛을 띠다가 나이가 들수록 차츰 흰 얼룩무늬가 많아진다. 조선시대 중국 베이징에 사신으로 간 관리들이 귀국할 때 솔방울을 가져와 퍼뜨린 것으로,생장이 매우 느리고 번식이 어려워 쉽게 볼 수 없다.
온실 옆 춘당지는 임금이 경작하던 권농장(勸農場)이라는 논을 일제가 연못으로 바꾼 곳이다. 춘당지를 한 바퀴 돌아 팔각칠층석탑과 성종의 태반을 넣은 항아리와 석물인 태실 입구를 지나면 인근의 진달래가 더욱 붉은 꽃잎을 피워내고 있다. 때 이른 진달래를 만나니 더욱 반갑다.
좀 더 걸어가면 경춘전과 환경전이 내려다 보이는 자경전 터가 나오는데 성인 무릎 높이의 키에서 하얀색과 자주빛이 섞여 있는 미선나무가 아름답다. 자경전은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멀리 앞쪽으로 아버지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이 보이도록 지었다는 대비의 침전이다. 지금은 사라지고 대신 화단이 자리잡고 있다.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나란히 선 통명전(왕비 침전)과 양화당을 지나 정조가 태어난 경춘전,숭문당 등 여러 전각이 잇달아 서 있다. 이 곳 뒤편으로 자리한 화계가 봄꽃들의 집결지다. 매실나무 다음으로 살구나무(15일),산옥매(30일),철쭉(4월말~5월 초순) 순으로 피어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궁의 가장 왼쪽 궐내각서 지역은 진달래동산인데,오는 10~20일 절정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이만희 창경궁 관리소장은 "창경궁은 미복원 지역이 많아 전통수종과 자생화를 특히 많이 심어놨다"며 "지난 겨울이 무척 추웠던 데다 봄비가 많이 왔기 때문에 올해 봄꽃들은 더 색깔이 고울 것"이라고 말했다.
창경궁 대온실에서는 11일까지 창경궁의 꽃 경치를 담은 사진전이 열린다. 온실 내 다양한 자생식물과 함께 자생식물화단에서 매발톱이나 세잎양지꽃,섬초롱꽃 등을 구경하는 것이 좋다. 자녀들과 함께 찾는다면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열리는 온실문화학교에 참여해 보자.직접 초화류를 심어보고 새참도 먹을 수 있다. 비용은 입장료 포함 1인당 2500원.
이 밖에 경복궁 홍례문 어구와 창덕궁 낙선재(매화),경복궁 경회루지와 덕수궁 대한문(벚나무),경복궁 자경전(살구나무),경복궁 아미산과 창덕궁 대조전(앵두나무),덕수궁 함녕전(모란) 등도 고궁의 정취와 봄꽃을 함께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곳이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