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북한 노동당 비서였던 황장엽 씨는 31일 "북한에 급변사태가 일어날 것으로 주장하는 것은 현실과 가깝지 않은 분석"이라며 "중국이 계속 지지하는 한 북한의 급변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을 방문 중인 황씨는 이날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초청 강연에서 "현재 북한에는 김정일을 반대할만한 큰 세력이 없으며, 북한 체제 내부 분열을 기대할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현재 북한에는 군대, 경찰, 적위대 등 독재를 실시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일반 대중보다 훨씬 많다"며 "다소의 변화 현상이 일어난다고 해서 큰 변화가 일어난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북한 내부 변화 가능성을 낮게 봤다.

황씨는 "북한 정권의 명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중국"이라며 "중국이 만약 북한과의 동맹관계를 끊는다고 하면 그것은 북한에 사망선고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중국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을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씨는 "일부 사람들은 중국이 북한에 대해 영토적 야심이 있다고 보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며 "중국의 이해관계는 북한이 자유민주주의화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압록강, 두만강 넘어 중국 만주 지방에는 조선족이 80만명이 살고 있다"고 전제한 뒤 "북한이 자유민주주의화될 경우 그 바람이 압록강, 두만강 넘어 중국으로 불어오게 돼 분열을 초래하는 것을 중국은 우려한다"며 "13억 인구를 통일시켜 유지하는 것이 중국의 가장 큰 이해관계"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때문에 중국에 북한을 중국식으로 개방하도록 유도하고, 수령 개인독재를 없애고 시장경제를 도입하도록 유도하도록 촉구하는게 바람직하다"며 "북한을 중국식 개방을 하도록 하는 것은 중국과 미국의 이익에 맞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씨는 이와 함께 "김정일 체제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경제전의 하나가 한국이 주변 4대 강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것으로 특히 한.중 FTA는 그 영향력이 클 것"이라며 "FTA를 경제적 이해관계만이 아니라 큰 정치적 투자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씨는 천안함 침몰사고의 북한 연루 가능성에 대해 "가능성이야 있지만 가능성만 갖고 책임을 추궁할 수 없다"며 "거기에 대한 정보도 없고, 이렇다 할 증거도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2012년 전작권 전환에 대한 북한의 대응에 관한 질문에 황씨는 "한국군이 강하고 한미동맹이 철저하고 빈틈이 없을 때 북한은 도발하지 못할 것"이라며 "전작권을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황씨는 자신이 북한에 있을 당시 납치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밝히며 "일본 사람을 납치해서 통역 등으로 쓴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몇명이나 그렇게 했는지는 몰랐고 그 문제에 관여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황씨는 특히 일본이 납치문제에 몰두하는 데 대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며 "일본이 납치 문제를 주장하는 것은 옳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납치문제를 일으키고 인권을 유린한 악당들을 향한 반민주독재 투쟁에 예봉을 돌려서 세계를 리드하는 각도에서 주장을 바꾸는 게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CSIS 한국연구 책임자인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의 사회로 2시간여 동안 진행된 강연회에는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 조지 부시 행정부의 백악관 동아시아.태평양 선임보좌관을 지낸 마이클 그린 등 한반도 문제 전문가, 학자, 언론인 등 40여명이 참석했다.

전날 워싱턴에 도착해 오는 4일 일본으로 향할 예정인 황씨는 워싱턴 체류 기간 일정을 보안에 부치고 있고 대부분 비공개 일정을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강연회도 한국 귀국시까지 비공개로 진행하려다 방침을 바꿔 공개했다.

지난 2003년 첫 방미 때도 철저한 경호 속에서 일정을 진행했던 황씨는 이번 방미도 극비리에 추진했고, 이날 토론회가 열린 CSIS 행사장을 참석하고 떠날 때까지 경호요원들 수 명의 삼엄한 호위를 받으며 움직였다.

(워싱턴연합뉴스) 성기홍 특파원 sg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