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경제 검찰'이라 불린다. 기업들의 부당한 행위를 조사해 시정 명령을 내리고 과징금을 부과하는 공정위 활동이 마치 범죄인을 수사하고 처벌하는 검찰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의미다. 공정위가 기업들을 괴롭힌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셈이다.

26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경 밀레니엄포럼에 참석한 정호열 공정거래위원장은 이에 대해 "경쟁을 촉진해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이 공정위 본연의 역할"이라며 "규제하고 간섭하는 기관이라는 오해를 씻어내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쟁 촉진을 통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시장 진입장벽을 제거하는 일에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내수시장을 확충해 대외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한국 경제의 당면 과제인데 전문자격사 시장의 진입 규제를 낮춰 교육 의료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의 발전을 돕겠다는 것이다.

정 위원장은 최근의 막걸리 붐도 규제 완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10년 전만 해도 막걸리는 신규 양조면허를 받을 수 없었고 판매 지역도 군 단위로 제한돼 있었는데,공정위가 규제를 완화한 이후 새로운 사업자가 등장하고 신규 투자가 이뤄지면서 막걸리 품질이 향상됐다는 것이다.

정 위원장은 "진입 규제를 해소하려고 하면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물론 인 · 허가권을 가진 행정당국도 싫어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효과가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진입 장벽 완화와 관련해 지난해 26개 항목을 개선한 데 이어 올해도 30여개 과제를 선정,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정 위원장의 기조연설 후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는 공정위 활동에 관한 다양한 지적과 제안이 쏟아졌다.

▲김영용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올해 공정위가 내세운 주요 과제 중 카르텔 감시가 있다. 일반적으로 카르텔은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지만 경제가 어려울 때는 카르텔을 허용하는 것이 경제적 후생을 높일 때도 있다.

▲정 위원장=한국은 시장경제의 역사가 아직 짧아 경쟁질서가 확립돼 있지 않다. 주요 공산품은 대부분 독과점 상태다. 공정위가 보는 건 압도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남용해 이득을 취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불공정거래 행위를 너무 미세하게 규제하면 오히려 반경쟁적 상태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문정숙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그동안 공정위는 자유보다 공정에 치중해 왔던 것 같다. 이제는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다 강조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정 위원장=공정위가 늘 되새기는 부분이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에 대해서도 그 이면에 그런 행위를 낳게 되는 제도적 문제점은 없는지 살펴보고 있다. 소비자 후생에 직접적인 해를 끼치는 일을 중심으로 감시하겠다.

▲송병준 산업연구원 원장=공정위가 기업을 한 식구처럼 생각할 수는 없다. 다만 망치를 가진 아이의 눈에는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공정위가 염두에 뒀으면 한다.

▲정갑영 연세대 교수=공정위가 지지를 받으려면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경쟁 촉진 활동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드링크제를 약국에서만 팔 수 있고 마트에서는 팔 수 없다는 건 국민들이 느끼기에 불편하다.

▲정 위원장=미국에서는 해열제 등 웬만한 상비약은 쇼핑몰에서도 판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가 만만치 않다. 성급하게 추진했다가 이해당사자 간 갈등만 불러일으키고 효과를 못 얻을 수도 있다. 고심 중이다.

▲현정택 인하대 교수=국내 기업이 외국 정부의 카르텔 규제에 걸려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물고 있는 것과 관련,이를 방지하기 위해 국내에서부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게 공정위 입장이다. 밖에서 안 맞도록 하기 위해 안에서 더 때리겠다는 건데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정 위원장=카르텔 법 집행을 1990년대 중반부터 적극적으로 했다면 오늘날 한국 기업들이 외국에 가서 과징금을 맞는 일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균형 있게 법을 집행하도록 하겠다.

▲차은영 이화여대 교수=기업 인수 · 합병(M&A)이 독과점을 낳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기업 구조조정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M&A 심사를 신속하게 해야 한다.

▲정 위원장=경쟁 제한이 가져올 폐해와 M&A를 통한 효율성 제고 사이에 어느 쪽이 큰지를 늘 따져본다. 심사 기간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강정호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여전히 공정위에 대해서는 파수꾼의 이미지보다 감시자라는 느낌이 강하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공정위의 조사 및 결정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황영기 차병원그룹 부회장=의료산업을 둘러싼 규제도 많다. 공정위가 나서 개선해야 할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정 위원장=요즘 한국으로 의료관광을 오는 외국인이 많다. 의료 및 관광산업 활성화로 연결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보겠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 원장=정부 산하인 우체국이 택배 등 일부 부문에서 민간 기업과 경쟁하고 있어 시장 질서를 왜곡할 수 있다. 개선이 필요하지 않은가.

▲전삼현 숭실대 교수=공정거래법이 기업 지배구조까지 규정하고 있는 건 문제가 있다.

▲정 위원장=민간 기업이 할 수 있고 시장 자율에 맡겨도 되는 일이라면 그렇게 하는 게 성숙한 시장경제다.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한 규제도 장기적으로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유승호/서기열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