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A사 B부사장은 올해부터 지인에게 축하할 일이 생기면 화환이나 난을 보내지 않는다. 대신 지인의 이름으로 가난한 복지관에 후원금을 기부한 뒤 후원금 영수증을 축하의 메시지가 담긴 카드와 함께 보낸다. 지난해 말 부사장으로 승진했을 때 김낙회 제일기획 사장과 김윤 삼양사 회장으로부터 소액 기부금 선물을 받은 게 계기가 됐다. 형식적인 선물보다 '뷰티풀 도네이션(아름다운 기부)'이 선물을 받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에게 더 의미있어 B부사장도 기부 대열에 동참했다는 후문이다.

승진 영전 등 경사를 맞은 사람에게 화환 대신 당사자의 이름으로 기부를 해주는 '뷰티풀 도네이션'이 기업과 기업인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진원지는 서울 구로구의 성프란치스꼬 장애인 종합복지관.2006년 가난한 복지관을 도와줄 방법을 고민하던 김낙회 제일기획 사장이 복지관 측에 낸 아이디어가 인연이 됐다. 이후 김 사장은 지인에게 축하할 일이 생기면 10만~30만원의 소액을 지인 이름으로 복지관 측에 대신 기부했다.

뷰티풀 도네이션이 알려지면서 기부의 손길은 급증하기 시작했다. 2006년 200만원에 불과했던 성프란치스꼬 장애인복지관의 기부금은 2007년 1050만원,2008년 2357만원,2009년 5734만원 등으로 매년 약 두 배씩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복지관 1년 예산의 30~40%가 이 기부금으로 충당될 정도였다.

뷰티풀 도네이션의 1등 공신은 기업과 기업인이다. 기부의 80~90%가 이들을 통해 이뤄진다. 소진세 롯데슈퍼 사장과 유철준 우림건설 사장은 대표적인 기부자들이다. 최근 한국도로공사 함평지사나 주식회사 강남필터는 임직원 생일 때 상품권을 주던 관례를 바꿔 기부금을 선물하고 있다. 뷰티풀 도네이션은 서울시 등 공공기관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이런 기부문화가 입소문을 타면서 30여명의 개인도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스승의 날이면 자녀의 선생님 이름으로 기부하기도 하고,결혼기념일엔 배우자의 이름으로 기부를 한다.

아름다운 기부의 가장 큰 장점은 선물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기분이 좋아진다는 점이다. 여기에 선물을 받는 사람에게 확실히 자신을 각인시키는 효과도 있다.

소 사장은 "옛날엔 승진을 하면 화환이나 화분을 많이 보냈는데 지금은 승진이나 결혼 당사자들에게 기부금을 선물한다"며 "지인들이 선물을 받은 뒤 굉장히 고마워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같은 방식으로 선물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m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