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애플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브 잡스는 아니었다. 단정한 신사복에 논리정연한 말투를 보면 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의 말에서는 스티브 잡스가 연상됐다. "아이폰과 관련된 소프트웨어가 돈을 벌 듯이 자동차도 이제 소프트웨어를 통해 돈 버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강조할 때는 특히 그랬다.

독일 뮌헨의 'BMW 벨트'에서 17일(현지시간) 열린 BMW 연례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노버트 라이트호퍼 회장(54) 얘기다. 그는 이날 자동차산업의 미래에 대한 확고한 비전,탄소섬유(carbon fiber)를 자동차에 상용화하는 등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겠다는 개척정신,BMW를 최고의 프리미엄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한 외신기자가 "자동차업계의 잡스 아냐"라고 수군거릴 정도였다.

◆자동차의 소프트웨어는 서비스다

라이트호퍼 회장은 자동차산업의 미래를 "하드웨어 못지않게 소프트웨어를 통해 돈버는 시대"라고 규정했다. "아이폰 관련 소프트웨어가 날개돋친듯 팔려 나가는 것처럼 자동차산업에도 그런 시대가 올 것"이라는 설명이다.

자동차의 소프트웨어를 '서비스'라고 정의했다. "전기차가 상용화되면 새로운 서비스가 요구되는 등 서비스도 프리미엄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며 "서비스시장이 자동차 판매시장보다 커질 수 있다"는 예도 들었다. 그의 결론은 명확했다. "이런 시대에 대비해 BMW를 기술(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서비스(소프트웨어)면에서 최고의 프리미엄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방법론도 분명했다. 돈이 되는 시장을 먼저 만들어 가겠다는 전략이다. 우선은 전기차였다. "2020년 전기차 시장은 전체의 5~15%로 커질 것"이라며 "소형 프리미엄 전기차인 '미니E'를 미국 LA와 뮌헨 등에서 테스트 중이며 내년에는 BMW '액티브 E'의 테스트도 시작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이를 바탕으로 최고 시속 160㎞까지 달릴 수 있는 도심형 전기차인 '메가시티비클'을 2015년부터 내놓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메가시티비클에는 슈퍼카나 스포츠카 등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탄소섬유를 상용화할 방침도 확실히 했다. 그는 "탄소섬유는 자동차산업의 최첨단 재료"라며 "이를 상용화해 자동차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도 숨기지 않았다.

◆소형차 모델 지속 확대

소형차도 잔뜩 기대를 거는 시장이었다. "2020년까지 프리미엄 소형차 시장은 매년 4~6% 성장할 전망인 만큼 미니(MINI) 브랜드뿐만 아니라 BMW 브랜드에서도 콤팩트카 등 소형차를 잇따라 개발할 예정"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BMW에서 가장 작은 '1시리즈'보다 더 작은 소형차 모델을 조만간 내놓겠다는 것.이를 위해 "BMW에는 없는 전륜구동이나 4륜구동차도 만들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라이트호퍼 회장이 올해 말까지 내놓겠다고 한 신차는 모두 17가지.뉴5시리즈를 비롯 3시리즈 쿠페,미니 최초의 4륜구동인 컨트리맨,롤스로이스의 고스트 등이다. 얼핏 저러다가 백화점이 되는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순간 라이트호퍼 회장은 "BMW의 지향점은 세계 최고의 프리미엄 브랜드"라며 "모든 모델은 프리미엄만으로 구성하며 2020년까지 200만대를 팔 것"이라고 말했다. 잘하는 것에 집중해 더 잘하겠다는 전략을 분명히한 것으로 비쳐졌다. 지역적인 선택은 동쪽이었다. "자동차 시장은 중국 인도 한국 등 동쪽으로 가고 있다"며 "중국 외에 한국시장도 상당히 밝게 보고 있다"고 했다. "다음달 1일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시장에서 출시될 뉴 5시리즈도 성공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라이트호퍼 회장은 뮌헨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공학도 출신이다. 1987년 BMW에 입사한뒤 유지보수,제어기술,도장 책임자를 두루 거쳤다. 2006년부터 회장을 맡고 있다. 취임 직후인 2007년 '스트래티지 넘버원'이란 전략 아래 자구계획을 선제적으로 실시,작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슬기롭게 넘기게 한 주인공으로 평가받고 있다. BMW는 작년 128만대를 팔아 507억유로(약 78조5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면서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뮌헨(독일)=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