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1700선을 넘었을 때 '좀 더 오를 수 있겠지'하며 주저하다 환매 기회를 놓쳐 안타까웠는데 이번에 1700선을 돌파하면 눈 딱 감고 바로 정리할 겁니다. "

코스피지수가 사상 최고치로 향해 치닫던 2007년 10월 '미래에셋디스커버리'에 가입한 회사원 이성호씨(37)의 얘기다. 월 적립식으로 투자한 이 펀드에서 이미 은행 정기적금 이자율의 두 배가 넘는 15%의 수익을 낸 이상 미련 없이 환매하겠다는 심산이다.

코스피지수가 1600선대 중반에 이르자 국내 주식형펀드의 환매가 재차 거세지고 있다. 지수가 오를 때마다 쏟아지는 환매 물량이 추가 상승의 발목을 잡는 양상이다.

15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국내 주식형펀드는 지난 4일부터 12일까지 7일 연속 자금이 빠져나갔다. 이 기간 펀드에서 9100억원의 환매가 일어났으며 신규 유입(설정)분을 뺀 순유출 규모만 5500억원을 넘었다. 지난 1월4~13일 8일 연속 빠져나간 이후 최장 기간 유출이다.

이런 추세라면 지난 1월에 이어 또다시 순유출 규모가 1조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에는 증시 조정 과정에서 주식형펀드에 7300억원의 자금이 들어왔다.

전문가들은 국내 증시가 오를 경우 국내 주식형펀드 환매는 꾸준히 이어질 것이며 1700선 위에선 그 규모가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대증권이 2002년 6월 말 이후 코스피지수대별 펀드 설정액을 조사한 결과 1700선 이상에서 38조원이 들어왔고,환매를 제외한 순유입액만 25조원에 이른다. 이 중 80%가 적립식이다. 적립식으로 매월 꾸준히 투자했다면 1700선 이상에서 유입된 자금도 모두 수익을 내고 있다.

특히 코스피지수가 사상 최고치였던 2007년 10월 말부터 넣기 시작한 적립식 투자자도 1600선에서는 7%대 수익을 얻고 있으며 1700선에서는 수익률이 15.6%까지 높아질 것으로 추정된다. 배성진 현대증권 수석연구원은 "1700~1800선 사이에만 10조원 가까운 펀드 매물이 대기 중"이라며 "글로벌 금융위기 동안 잠시 납입을 중단한 투자자도 1700선 이상에선 원금에 가까워져 환매 욕구가 높아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시장의 관심은 펀드 매물을 연기금과 외국인이 어느 정도는 소화해 줄 것인가에 쏠리고 있다. 주요 연기금은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이자 올해 주식 비중을 잇따라 확대,어느 정도 매수 여력은 있다는 분석이다. 또 국내 증시가 올해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덱스) 선진국 지수에 편입될 가능성이 높아 외국인도 펀드 매물 소화에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각 연기금의 기금 운용계획을 토대로 분석해 보면 올해 연기금이 주식시장에서 추가로 순매수할 규모는 14조원 정도로 예상된다. 연기금들의 연말 국내 주식 보유 목표치와 올 들어 순매수한 규모(9000억원가량)를 뺀 수치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올해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을 전체 자산(304조원)의 16.6%로 잡았다. 따라서 올 연말까지 국민연금이 갖고 있어야 할 국내 주식은 50조4000억원어치다. 작년 말 36조3000억원(13.1%)의 주식을 보유한 점을 고려할 때 국민연금은 올해 14조원가량의 주식을 더 사야 한다는 얘기다.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우정사업본부 등 다른 연기금들도 주식 비중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작년 말 기준으로 국내 주식에 운용 자금의 16%가량(1조2000억원)을 투자하고 있는 사학연금은 올해 국내 주식 비중을 19% 안팎으로 확대한다. 이에 따라 사학연금은 올해 운용 규모를 8조2000억원으로 늘리면서 3000억원 이상의 주식 매수 여력이 생기는 것으로 파악된다.

공무원연금도 올해 국내 주식 비중을 작년보다 2.5%포인트 높여 15.1%로 잡아 약 1000억원의 추가 매수 여력이 생겼다. 25조원의 보험 적립금을 운용하고 있는 우정사업본부의 현재 주식 비중은 적립금의 5%여서 상한선까지 주식을 살 경우 최대 3조원 이상의 매수 여력을 갖는다.

한편 외국인들은 글로벌 경기가 회복될 조짐을 보이자 MSCI 선진국증시에 편입이 확실시되는 국내 주식을 올 들어서만 2조5000억원어치 이상 사들이고 있다.

서정환/김재후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