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핵무기 확산을 막고 원자력의 평화적 사용을 유도하기 위한 중진국들(middle powers)의 역할론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 러시아 등 강대국을 중심으로 한 핵무기 억제 움직임이 제3세계 국가들의 반발을 사며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어서다. 수십년간 원자력을 평화적 목적으로만 사용해 온 캐나다 스웨덴 노르웨이 등 중진국의 비핵(非核) 구상인 'Middle Power's Initiative(MPI)'가 국제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이들의 목소리가 국제적 공감대를 얻을 경우 원전을 신성장동력으로 설정한 한국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10일부터 12일까지 열리는 '세계 원자력정상회의'에서도 MPI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과 발전 방향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핵무기 확산을 막기 위한 대표적인 국제 협약은 1969년 유엔총회에서 제정된 '핵확산금지조약(NPT · Non-Proliferation Treaty)'이다. 미국과 러시아 양국이 핵무기 보유국이 늘어나지 않도록 억제하기 위해 조약을 주도했다. 핵보유국이 핵무기 및 기폭장치 기술 등을 제3국에 이양하는 것과 비핵보유국이 핵보유국으로부터 핵무기를 넘겨받거나 자체 개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NPT에는 한국을 비롯해 189개 나라가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회원국은 5년마다 평가회의를 열어 △핵의 평화적 이용 △핵무기 기술 및 핵물질 획득 여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안전조치협정 등을 상호 점검하고 있다. NPT의 제정 취지에는 세계 각국이 공감을 나타냈지만,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강대국들이 핵확산 금지를 주도한다는 점은 한계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은 강대국들의 일방적인 조치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며 NPT 가입을 거부하고 있다. 북한은 1985년 12월 조약에 가입했다가 1993년 3월 돌연 탈퇴를 선언하며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MPI는 NPT 등 국제적인 핵 비확산 노력이 겉돌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대안이다. 핵 국가와 비핵 국가의 중간자적 입장에 있는 중진국들이 핵확산 금지를 주도할 경우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게 MPI의 핵심 논리다.

원자력 중진국에 포함돼 있는 캐나다 스웨덴 노르웨이 호주 등은 비핵화에 대한 의지가 뚜렷한 데다 원자력 원천기술 및 산업에 대한 경쟁력을 갖고 있어 핵을 둘러싸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각국 정부의 이해관계를 풀어낼 적임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은 MPI 참여를 통해 주변국은 물론 국제사회로부터 받는 핵 관련 의혹을 해소하고,비핵국가로서의 국제적 지위를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허증수 경북대 교수(세계 원자력 정상회의 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는 "세계 원자력 정상회의를 여는 것은 이들의 중립적인 목소리를 세계적으로 확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