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난국 극복과 아울러 올해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는 남북 통일인 듯 보인다. 크고 작은 모임에서 통일 이야기는 빠질 줄 모른다. 놀랄 일은 아니다. 독일 통일 30주년을 맞아 호르스트 쾰러 대통령 등 독일 저명 인사들이 잇따라 방한해 통일의 교훈을 전해주고 있다. 북한 내부 사정이 심상치 않다는 보도도 끊일 줄 모른다. 김정일의 건강과 후계 구도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는가 하면 경제와 사회가 위기에 처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다행스럽게도 정부는 남북 관계의 급변 가능성을 대비하고 있는 듯하다. 군은 미군과 함께 북한의 대량 살상무기를 안전하게 확보하기 위한 훈련을 하고 있다. 연구기관들은 북한 개발에 소요될 재원 조달 방안을 연구 중이다. 국내 한 언론은 정부가 급변사태 대비 계획을 수립했다는 기사로 화제를 모았다. 이에 반해 개인과 기업 사이에서는 통일 가능성에 대처하고자 하는 노력을 찾기 힘들다.

통일은 개인과 기업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첫째,개인투자자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 서독의 경우 증시는 통일 직전 큰 폭으로 상승한 바 있다. 우리의 경우도 통일은 주가 상승 모멘텀을 제공해 줄 가능성이 높다. 중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지 않을 경우 지정학적 리스크를 없애줄 것이다. 증시를 짓눌러온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 중 하나를 제거해 줄 것이다.

둘째,금융업계도 통일 효과를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이 활성화될 것이다. 건설사들과 수출 기업들은 물론 식품,의류 그리고 유통 등 내수 기업들도 북한 시장 선점을 위한 투자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인수 · 합병 사업 건수도 크게 늘 것이다. 북한 국영기업들에 대한 획기적인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업체들은 명실상부한 투자은행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장밋빛 미래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첫째,부동산 시장에 일대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 독일의 경우 서독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급락한 바 있다. 동독 지역에 대한 대형 개발 사업이 잇따르면서 공급 과잉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의 경우도 통일은 저출산 현상과 맞물려 남한 지역의 부동산 경기를 얼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북한 지역에 대한 부동산 소유를 막는다고 하더라도 경기도와 강원도에 집중돼 있는 군사보호구역이 대폭 해제되고 북한 지역으로 공장을 옮기는 기업체가 속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일부 금융회사들이 시련을 겪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부동산이 개인자산에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일 뿐만 아니라 이를 담보로 거액의 채무를 지고 있는 가정이 많다. 가처분소득 대비 개인 부채 비율은 1.4배에 이른다. 따라서 부동산 시장 냉각은 통일 비용 지출로 야기될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금리인상 정책과 함께 많은 개인들을 채무이행 불능 사태에 빠뜨릴 수 있다. 개인과 영세 자영인,중소기업들에 대한 대출 사업에 치중하는 금융회사들에 치명타를 안기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가능성을 고려했을 때 정부는 개인과 기업에 가져다 줄 경제적 혼돈과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통일이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통일 대비를 위한 논의에 기업과 개인의 참여를 장려해야 한다. 개인들과 기업들도 다양한 통일 시나리오에 따른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사업 비전 및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듬어야 한다. 통일이 동반할 경제 · 사회적 격변을 도약의 발판으로 만드느냐, 아니면 쇠락의 구렁텅이로 만드느냐는 대비가 얼마나 충실했느냐가 결정할 것이다. 미래는 준비한 자만의 것이라는 진리를 되새겨야 한다.

윤계섭 < 서울대 교수·경영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