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안정 등을 위해 회사가 사들이는 자사주(자기주식)가 최근 경영권 방어수단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경영권이 불안한 상장사가 자사주를 우호세력에 돈을 받고 팔 경우 백기사를 확보할 수 있는데다 유동성 개선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회사의 우호세력인 우리사주조합, 재단법인, 사모펀드(PEF) 등에 넘길 경우 의결권이 되살아난다.

동아제약, 우리사주조합ㆍ재단에 자사주 공짜로 넘겨 '의결권 부활'

이달초까지 경영권 분쟁에 휘말렸던 동아제약이 가장 좋은 예다. 동아제약은 2007년 강신호 회장과 둘째 아들 강문석 전 이사간 경영권 분쟁을 겪었던 회사다. 올 1월에는 6촌 관계인 강용석 제이콤 공동대표와 지분인수전을 벌여 경영권 분쟁설이 또 불거져나왔다.

이처럼 동아제약에 대한 경영권 분쟁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은 경영진의 지분구조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강 회장의 보유지분은 현재 5.28%(2009년 9월30일 기준)에 불과하고, 강 회장의 친인척 및 특수관계인 등을 총동원해도 지분은 약 10%.

경쟁업체인 한미약품이 확보하고 있는 동아제약 지분(8.91%) 규모는 그래서 늘 위협적이다. 한미약품은 동아제약의 주요주주로, 동아제약의 경영권을 항상 노리고 있다는 게 관련업계 전문가의 판단이다.

동아제약은 취약한 지분구조를 약간이라도 개선하기 위해 결국 자사주까지 동원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회사는 작년 9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자사주 약 10만3000주(1.01%)를 우리사주조합과 자사의 재단법인인 수석문화재단(이사장 강신호)에 각각 9만3000여주(115억원)와 1만여주(10억원)를 공짜로 넘겼다. 현재 동아제약의 자사주는 기존 14만7600여주(1.44%)에서 4만5000주(0.43%)로 눈에 띄게 줄었다.

이에 앞서 동아제약은 2008년 7월과 10월 두차례에 걸쳐 자사주를 사들이면서 신고서의 취득목적란에 '자사 주가안정'라고 기재했다.

동아제약 관계자는 "사회사업을 벌이고 있는 공익재단을 지원하기 위해 자사주를 무상으로 넘긴 것일 뿐"이라며 "현금으로 재단을 지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식으로 나눠줄 경우 배당을 챙길 수 있는 등의 장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우리사주조합에 자사주를 무상출연한 것도 직원들의 복지향상 등 본래 취지의 우리사주조합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 회사계좌에서 우리사주계좌로 자사주를 옮겨 놓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진해운ㆍ대원강업, 사모펀드 친인척에 자사주 팔아 경영권 강화

지난해 말 지주사로 전환한 한진해운도 동아제약과 유사한 경우다. 다만 한진해운은 자사주를 우리사주조합 등에 넘기지 않고 장외에서 돈을 받고 사모펀드(PEF)에 매각한 점이 다르다.

지난해 11월 한진해운은 자사주 320만주(지분 3.62%)를 한 PEF에 600억원을 받고 모두 처분, 의결권을 되살렸다. 당시 한진해운은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이 시아주버니 조양호 회장이 이끌고 있는 한진그룹으로부터 벗어나 계열분리를 하기 위한 복안으로 자사주를 활용했다는 얘기가 시장에 나돌았다.

한진해운의 지주사 전환을 코앞에 두고 한진해운이 자사주를 돌연 매각, 의결권 있는 지분 3%를 확보해 지분을 높여 경영권을 강화한 것.

또 친인척 관계자가 대표로 있는 회사에 자사주를 팔아 우호세력으로 만든 사례도 있다. 지난 12월초 자동차용 스프링 제조업체인 대원강업이 자사주 460만주(지분 7.67%)를 인척기업인 현대홈쇼핑에 93억여원에 팔았다. 현대홈쇼핑 정교선 대표이사는 허재철 대원강업 대표이사 회장의 맏사위다.

대원강업이 자사주를 인척기업에 팔아 의결권을 살린 이유는 비상장 기업인 고려용접봉이 대원강업 보유지분을 20% 이상으로 대거 늘려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주주를 위해 사들인 자사주…경영자를 위해 판다?

현행 상법상 자사주를 처분하는 것과 관련해 어떤 법규정도 없다. 자본시장통합법 등에도 자기주식을 취득할 때 매입 규모와 목적 등에 관한 규정이 명시되어 있을 뿐 자사주 처분에 관한 규정은 찾아볼 수 없다.

한국거래소 공시제도팀 관계자는 "자사주를 취득할 때 사는 이유를 밝혀야 하는 등의 규정은 있지만, 자사주 처분에 관한 규정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경영자가 자사주 처분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더라도 분명 공시를 통해 자사주 매입 목적(주가안정 등 주주가치 제고)을 밝힌 상황에서 무리하게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를 무단 활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한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동아제약의 경우 자사주를 팔아 현금 유동성을 확보한 것도 아니고 공짜로 자사 재단법인과 우리사주조합에 자사주를 넘겨줬다"며 "이는 의결권을 되살려 우호지분을 늘리려는 수단으로 자사주를 이용한 것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인수합병(M&A) 전문가들도 "경영자의 판단만으로 자사주를 무상으로 처분하는 등의 행위는 공정시장이란 측면에서 볼 때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는 결정"이라며 "자사주를 장내외에서 매각하면 현금창출이 가능한데도 굳이 무상출연하는 것은 주주가치를 회손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증시전문가는 "경영권 분쟁시 우호지분을 얻기 위해선 많은 돈이 필요한게 사실"이라며 "동아제약이나 한진해운 대원강업 등은 보다 손쉽게 경영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자사주를 변칙적으로 활용하는 보기 드문 사례"라고 평가했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 j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