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린달세금'이 불가능하므로 정부는 나랏일에 필요한 세금을 강제로 징수한다. 사람마다 더 적게 내려고 하는 만큼 세금과 세율의 결정은 사회정의에 합당하게 이루어져야 뒷 말이 없다.

우선 민주국가에서는 세금을 의회에서 정한다. 영국은 명예혁명기의 '권리장전'에서 이 원칙을 확정하였고, 미국 독립전쟁도 '대의 없이 납세 없다'는 사회적 요구에서 비롯하였다. 법률에 의하지 않고서는 정부가 자의적으로 세금을 부과할 수 없는데 이 원칙을 조세법률주의라고 한다.

그 다음 원칙은 담세능력이 큰 고소득자가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한다는 것이다. 소득세율은 더 높은 소득구간에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누진세의 원칙을 따른다. 누진세는 고소득자들의 세금 부담은 단계적으로 높이면서 저소득자들은 아예 면세 처분한다.

그러나 소비세는 징세 시점에서 소비자의 소득수준을 일일이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판매상품 한 단위당 일정한 세율을 적용하여 징수한다. 소득이 열 배로 늘 때 소비가 열 배로까지는 늘지 않으므로 소득이 높을수록 소득 1원당 지출하는 소비세는 오히려 감소한다. 즉 소비세는 역진적이다. 그러나 소비세를 덜 내는 고소득층은 소비 대신 저축으로 축적한 재산에 대하여 재산세를 더 내는데, 재산세는 보통 누진적이다.

소득계층별 소득 1원에 대한 담세 규모는 소득세와 재산세의 누진성과 소비세의 역진성의 정도에 따라서 다르다. 우리나라는 월 소득이 173만원 이하이면 근로소득세를 면제하는데 2008년 현재 전체 근로자의 43.4%가 면세자였다. 그리고 상위 10%의 고소득 근로자들은 전체 근로소득세의 64.3%를 납부하였다.

최근 추세를 보면 면세근로자의 숫자는 점차 감소하는 가운데 상위 10% 고소득 근로자의 세금부담 비중은 점차 늘어나는 중이다.

모든 국민이 주인의식을 갖고 나라살림을 감독하려면 국민 모두가 조금이나마 소득세를 내고 있는 것이 좋다. 뜨내기 외국인도 내는 소비세 납부만으로는 주인의식을 갖기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소득자의 세부담이 근소하다는 전제로 면세자 감소추세는 바람직하다. 고소득층의 세금만 줄였다고 비판 받는 최근의 세제개혁은 64.3%에 이르는 상위 10% 고소득자 세금부담 비중이 계속 늘고 있는 현실을 시정하려는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

누진적 소득세와 재산세, 그리고 일정세율의 소비세 체제에서는 소득과 물가가 같은 비율로 증가할 때 실질소득이 변함 없는데도 국민의 세금부담은 더 커진다. 우선 일정세율의 소비세 납부액은 정확히 소득증가의 비율 만큼 증가한다.

그러나 소득 증가는 누진세율의 적용을 받아서 그보다 더 많은 소득세 증가를 불러온다. 누진적 재산세 납부액 역시 부동산 가격의 상승 비율보다 더 많이 증가한다.

결과적으로 총 납세액은 소득 증가율보다 더 큰 비율로 증가하기 때문에 국민은 소득 1원당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이승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