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에도 눈코 뜰 새 없습니다. 그래도 제가 출자한 회사가 쑥쑥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면 힘이 절로 납니다. "

지난 21일 전남 장흥군 관산읍 송촌리에 있는 장흥 무산김주식회사 물류센터.300평 공간 한쪽에 놓인 작업대에서 직원들과 함께 김을 포장하느라 땀을 흘리고 있는 이 회사 송명섭 사장(60)은 "설립 2년을 맞아 매출이 예상보다 크게 늘고 있다"며 밝은 웃음을 지었다.

불순물을 없애기 위해 통상 사용하는 염산 등 유 · 무기산(酸)을 전혀 쓰지 않았다고 해서 '무산김'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회사는 태생이 독특하다. 장흥지역 어민 110명이 직접 출자해 차렸다. 출자금은 인당 300만원에서 3000만원.어민 일부는 김으로 현물 출자하기도 했다. 자본금 11억원에 사장을 포함,직원이 모두 다섯 명인 초미니 회사이지만 올해 매출목표를 작년 3억원의 열 배로 잡을 만큼 성장세가 예사롭지 않다. 송 사장은 "지난해 300평짜리 저온 저장고를 갖춘 데 이어 올해는 20억원을 들여 500평 규모의 김가공 공장을 10월까지 완공할 계획"이라며 "미국 일본 유럽 러시아 등 해외시장 공략에 나서 향후 3년 내 매출 100억원대의 중견업체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전남지역에 지역특산품 생산자가 주주로 참여하는 주식회사 설립 붐이 일고 있다. 수산업에서는 지난해 무산김을 비롯해 '완도 전복' '여수 녹색멸치' '신안 젓새우' '신안 우럭' 등 다섯 곳이 설립된 데 이어 올해 민물장어(나주 영암 등),메생이(장흥 강진 완도),홍합(여수),꼬막(보성 고흥 여수) 홍어(신안) 등 다섯 개 품목을 다루는 회사도 설립될 예정이다. 농산물의 경우 지난해 말 나주지역 산란계 사육농민 47명이 12억4000만원을 출자해 '녹색계란 주식회사'를 설립했고 올해 배추(해남),딸기(담양),무화과(영암),검정쌀(진도),석류(고흥) 등 8개 품목의 생산 농가들도 회사를 세운다. 임산물로는 떫은감(영암),조경수(순천),밤(광양),표고(장흥),산약초(구례 등) 재배농민들이 회사 설립을 위한 사업 타당성을 분석하고 있다.

전남지역 생산자들이 회사를 직접 차리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전남지역은 농 · 림 · 수산업 등 1차산업 비중이 35%로 전국 평균보다 세 배 이상 높지만 출하 시기가 한꺼번에 몰리거나 유통단계가 복잡해 제값을 못 받는 문제가 반복돼 왔다. 출하기 때마다 가격 후려치기,대금결제 지연 등으로 속앓이를 해온 농어민들이 찾은 해결책이 바로 생산자 주주 회사다.

주식회사 설립을 통해 농어민들은 높은 출하가격을 보장받게 됐다. 장흥 무산김은 과거 한속(100장)당 2200~2500원에 불과했지만 주식회사 설립 이후 유통 단계를 크게 줄여 4500~5000원까지 받고 있다. 원료생산자에 그쳤던 이들 농어민 주주들은 생산 · 유통 과정까지 참여하면서 수익을 다원화했고,배당과 자산증식 등을 통한 직 · 간접적 혜택도 얻고 있다. 고령화된 주주들이 더 이상 일을 못하더라도 회사를 통해 배당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려 회사마다 신규 참여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박준영 전남지사는 "해마다 기업화 대상품목을 확대해 궁극적으로는 모든 품목별 회사를 거느린 '전남도 그룹'을 일궈낸다는 게 목표"라며 "주식회사 설립에 지원을 아끼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무안=최성국 기자 sk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