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발가락뿐이다. 뇌병변으로 몸이 마비돼 있기 때문이다. 발음도 부정확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 어렵다. 그런데도 왼쪽 발가락에 연필을 끼우고 시를 쓴다. 글 쓰는 법을 배운 적이 없어 서툰 표현도 가끔 눈에 띄지만 그의 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용기를 준다. '발가락 시인'으로 불리는 이흥렬씨(56) 얘기다.

이씨가 사고를 당해 뇌성마비가 된 것은 두 살 때다. 서른 살까지 집안에서만 지냈다. 장애인을 '인간' 취급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탓이었다. 가족들조차 외부에 알려질까봐 장애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던 시절.팔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면 생을 마감했을 것이라고 털어놓을 정도로 힘겨웠다. 서른두 살에야 자립을 위해 재활원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절망감이 들고,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일 때마다 글을 썼다. 배가 고플 때 라면 살 돈조차 없어 서러움이 북받쳐도,주전자의 물과 걸레가 얼어붙을 만큼 방이 추워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아파도 앓아 눕지 못하는/앉은뱅이 꽃/마음을 다해 태워도/신열은 향기로만 남는/뿌리 깊은 앉은뱅이 꽃/갈대밭 세상에서/숨어서 보일 듯 보이지 않는/키 작은 내 모양'('앉은뱅이 꽃')

자신이 쓴 글들이 시라는 걸 알게 된 것은 재활원을 취재하러 온 기자에게 우연히 일기장을 보여주면서다. 그 때부터 살아갈 이유가 생겼다.

1991년 150여편의 시를 묶어 시집을 냈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검정고시로 초 · 중 · 고교 과정을 마친 후 2008년엔 영진사이버대 사회복지계열에 들어갔다. 발로 받아적다 보니 필기속도가 느린데다 강의 내용도 잘 소화할 수 없어 첫 두 학기엔 고전했다. 하지만 철저한 예 · 복습과 인터넷으로 강의를 반복해서 듣는 등 무서운 집념으로 나중엔 장학금을 받을 만큼 성적을 끌어올렸다. 그가 힘든 대학생활을 마치고 지난 21일 졸업을 했다. 학사학위와 함께 사회복지사 2급 자격을 따낸 것이다.

이씨는 두 번째 시집을 준비중이다. 그동안 써온 일기를 묶어 책도 낼 예정이다. 2006년 결혼한 아내와 함께 복지관을 세워 장애인들과 생활하며 시를 쓰는 꿈도 갖고 있다. 소박하지만 더없이 아름다운 꿈이다. 아마 그 꿈은 이뤄질 것이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그는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