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 코리아' 이끈 과학의 힘] 단거리 맞게 '피스톤 근육' 만들어…준비된 '금빛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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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인 모태범 · 이상화(이상 21 · 한국체대)의 유니폼은 양쪽 팔 모두 파랗지만 이승훈(22 · 한국체대)의 유니폼은 오른쪽만 파란색이다. 이 파란 부분에 촘촘한 홈이 더 나 있어 공기 저항을 줄인다. 단거리 전문인 모태범과 이상화는 경기 중 양팔을 흔들며 속도를 내기 때문에 양쪽에 파란 천을 댄다. 반면 장거리 선수인 이승훈은 왼쪽 팔은 허리에 두고 오른쪽 팔만 휘젓기 때문에 오른쪽 팔에만 썼다.
한국 동계 올림픽의 역사가 매일 새롭게 쓰이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스피드스케이팅이 최고의 인기 종목으로 자리 잡을 태세다. 온 국민의 관심을 끈 요인은 당연히 '메달 수확'이다. 갑자기(?) 한국 선수들이 선전하는 이유는 뭘까. 그 밑바탕에는 피땀 나는 선수들의 '노력'과 체계적인 '훈련',첨단 과학을 입은 '장비'라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서다. 최악의 기상 조건과 운영 미숙에 더해 활도(미끄러짐)가 떨어져 '슬로벌(slowbal)'로 불리는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에서 태극 남매들이 선전하는 것도 '과학의 힘'이라는 지적이다.
◆이상화와 모태범은 '작은 근육 거인'
이상화는 대표팀 남자 동료들에게 자주 "네가 여자냐"는 말을 들었다. 허물없이 어울린 탓도 있지만 올림픽 금메달을 향한 '색다른 몸짱' 도전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상화는 얼음 위에서뿐 아니라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때도 남자 선수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스쿼트(역기를 들고 앉았다가 일어나는 운동)를 할 때 세계 최고 수준의 여자 선수들보다 30㎏이 더 무거운 170㎏까지 들었다.
지난해 체육과학연구원은 국가대표의 근지구력(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오래 반복할 수 있는 능력)을 측정한 뒤 깜짝 놀랄 만한 결과를 얻었다. 이상화의 근지구력이 75%(측정기로 30회 반복운동을 하면서 첫회를 100으로 봤을 때 30회째 근력이 첫회의 75%까지 유지했다는 것)로,모태범(73%) 이규혁(71%) 이강석(68%)을 앞선 것이다.
이상화와 모태범은 '타고난 몸에 훈련이 빚어낸 걸작'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이상화와 모태범의 각근력(체중을 100%로 봤을 때 바로 빙면을 미는 능력을 환산한 수치)은 각각 270%,370%(여자는 250%,남자는 350% 이상이면 아주 우수한 것으로 평가)다. '금벅지' '철벅지'로 불리는 이상화의 허벅지(23인치) 사이즈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두 선수의 '강철 몸매'는 몇 년 전부터 체육과학연구원의 철저한 분석을 토대로 이뤄진 노력의 산물이다. 단거리(500m) 종목에서는 파워 못지않게 근지구력이 중요한데 상대적으로 왜소한 아시아 선수들은 근지구력을 향상시켜 서양 선수와 맞설 수 있다. 근지구력을 늘리기 위해 이들은 태릉선수촌 메인스타디움에서 사이클 훈련을 자주 했다. 그것도 자동차 타이어를 뒤에 달고 400m 트랙을 돌고 또 돌았다. 윤성원 체육과학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두 선수는 신체의 한계를 뛰어 넘는 고통을 참아내고 파워뿐 아니라 근지구력을 키워 값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고 설명했다.
◆유니폼은 실력 향상 '첨병'
국가 대표팀이 착용한 유니폼은 단순히 공기 저항 축소를 넘어 첨단 기능으로 실력 향상에 이바지한다. 나이키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직접 제조한 곳은 국내업체인 'INS102'다.
스피드스케이팅 유니폼은 '속도 향상 맞춤복'이다. 이전 유니폼은 경기 도중 옷의 겉이 말려 주름이 생기고 공기 저항이 컸다. INS102는 나이키와 함께 2년 동안 공기 저항을 줄이는 방안을 연구했다. 두 회사는 유니폼의 겉면을 폴리우레탄(PU)으로 코팅 처리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2008년 12월 일본 나가노에서 열린 스피드월드컵부터 착용한 결과 평균 0.036초 기록 단축 효과를 봤다.
유니폼 오른쪽 허벅지 안쪽의 은색 줄무늬도 멋이 아니다. 코너를 돌 때 마찰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끌미끌한 합성섬유로 처리한 것이다. 게다가 유니폼 표면은 촘촘한 홈이 나 있어 공기 저항을 줄여준다. 윤 연구원은 "유니폼의 작은 구멍은 일종의 '돌기 현상'을 만들어 선수가 받는 공기 저항을 분산시킨다"고 설명했다.
쇼트트랙 유니폼은 '안전'이 우선이다. 쇼트트랙은 기록이 아닌 순위 경쟁이어서 몸싸움이 잦고 부상도 빈번하다. 날카로운 날로 인한 부상을 줄이기 위해 손목과 무릎 뒤편 등 핏줄과 힘줄이 모여 있는 중요 부위에 방탄 재질의 합성 섬유를 넣었다.
김진수/김주완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