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청나라 시대 학자인 섭덕휘는 책을 어지간히도 사랑한 모양이다. 그가 남긴 시 <환빈이 책을 사는 노래>를 보자.

'책을 사는 것은 첩을 사는 것과 같아/고운 용모에 마음 절로 기뻐지네/첩이야 늙을수록 사랑이 식어가지만/책은 낡을수록 향기 더욱 강렬하지/책과 첩,어느 것이 더 나을지/쓸데없는 고민이 자꾸 이어지네/때로는 내 방에 죽치고 있는 첩보다/서가에 가득한 책이 더 낫지.'

축첩이 가능했던 시대의 정서가 잘 와닿지 않겠지만 첩을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로 대체해 음미하면 책을 향한 그의 열정이 바로 이해된다. 섭덕휘만큼 독서광이 아니라도 어딘가에 조용히 틀어박혀 책을 뒤적이고 싶은 날이 있다. 이럴 땐 책이 빼곡하게 꽂힌 북카페를 찾아보자.

롯데호텔 안 북카페=서울 중구 롯데호텔 서울 신관 14층 로비에는 아늑하고 우아한 카페 '살롱 드 떼'가 있다. 개장한 지 4년이 가까워오지만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 특급호텔 안의 숨어 있는 명소다.

'살롱 드 떼'가 있는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책들이 맞이한다. 로비의 책장을 지나 '살롱 드 떼'에 입장하면 고상한 학자의 개인 서재로 초대받은 듯한 기분이 든다. 벽면 가득 책들이 깔끔하게 꽂혀 있다. 소장 도서는 약 3000권에 달한다. 쉽게 접할 수 없는 고가의 해외서적이 많다. 예술이나 건축,사진 등 다양한 분야의 희귀서적이 즐비해 책장 앞에 서 있기만 해도 뿌듯해진다.

도판이 충실한 책들도 많아 사진이나 그림만 보며 책장을 넘겨도 시간이 잘 간다. 테이블도 널찍하고 테이블끼리 넉넉하게 거리를 둬 책을 마음껏 쌓아두고 한적하게 독서를 즐기기에 딱이다.

이곳에서는 다즐링 · 아쌈 · 얼 그레이 · 실론 등 홍차와 카모마일 · 로즈 힙 · 스트로베리 가든 등 허브티 30여종,패스추리와 쿠키,애프터눈 티 세트(오후 2~5시 주문 가능)를 맛볼 수 있다. 차 가격은 세금과 봉사료를 포함해 1만4000원대다. 가격이 높은 편이지만 세련된 티웨어에 나오는 차를 보는 순간 기분 전환이 된다. 영업시간은 오전 7시~오후 10시.(02)759-7477

홍대 앞 북카페=서울 홍익대 앞 골목골목에는 아담한 북카페가 많다. 처음 찾아가는 사람은 헤매기 십상이니 만약을 대비해 전화번호를 적어가는 게 좋다. 간단한 식사나 주류를 이용할 수 있는 곳도 있다. 대부분 오후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열며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를 구비해 놓았다.

'그리다꿈'(02-3143-7650)은 혼자 가기 좋은 북카페다. 자리마다 작은 스탠드가 있어 학창 시절에 출입하던 독서실같다는 느낌이다. 물론 독서실의 상징(?)인 높은 칸막이는 없다. 조용히 독서에 집중할 수 있어 홀로 책을 벗삼는 사람들에게 인기다. 혼자 카페에 앉아있는 걸 민망해하는 사람도 여기라면 괜찮을 듯.금~일요일과 공휴일에는 이용시간이 6시간 이내로 제한되니 참고할 것.

'창밖을 봐,바람이 불고있어 하루는 북쪽에서 하루는 서쪽에서'(02-322-2356)는 엄청나게 긴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이다. 이곳의 특징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 앉아야 하는 좌식 북카페라는 점.바닥에 앉아 다리를 쭉 펴고 책읽기를 즐긴다면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4~5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여럿이라 조근조근 독서의 즐거움을 함께할 친구끼리 와도 좋겠다. 이름값을 하려는 듯 통유리창이 시원하다.

'살롱 드 팩토리'(02-324-6834)는 지하에 자리잡은 북카페다. 들어서는 순간 바로 보이는 벽면 가득 책이 꽂혀 있어 책 고르는 즐거움이 크다. 음악 CD도 진열돼 있다. 이곳은 작가와의 만남이나 낭독회 등 문화행사가 자주 열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토끼의 지혜'(02-332-1457)는 2호점까지 낼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리는 북카페다.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처럼 테마별로 책을 찾기 쉽게 진열해놓은 책장이 특징.그날 끌리는 테마의 책 중에서 골라잡기가 편해서 좋다. 깔끔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로 유독 이곳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작업실'(02-338-2365)은 입구 옆 벽면에 있는 달팽이처럼 꼬인 책장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수다떠는 도서관'(02-3142-9131)은 이름 그대로 정겨운 동네 사립도서관같다.

삼청동 북카페=서울 삼청동길과 청와대 가는 길 사이의 갈랫길에 자리잡은 '진선 북카페'(02-723-5977)는 널리 알려진 곳.정원이 딸린 이층집같은 건물이라 찾아가기 쉽다. 노란 간판이 눈길을 끄는 '내서재'(02-730-1087)에는 책이 상당히 많은 편.다만 삼청동의 특성상 주말에는 자리잡기가 쉽지 않다.

아담한 북카페를 선호한다면 '엔'(02-733-1054)이 좋다. 규모가 크지 않아 아늑하다.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 친구가 있다면 삼청동 나들이 때 '서울셀렉션'(02-734-9565)에서 차 한잔 해도 괜찮다. 동십자각 부근 출판문화회관에 있다. 이곳에는 한국에 관한 책뿐 아니라 DVD와 CD도 구비돼 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