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재테크 포트폴리오'의 필수 아이템 중 하나인 펀드.잘만하면 예금이자를 웃도는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지만 자칫 손실을 입을 수 있어 판매사와 투자자 간에 분쟁이 적지 않다. 펀드는 기본적으로 원금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품이어서 투자자들이 판매사 권유로 가입해 손실을 입었다고 해도 소송에서 이기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은행의 '불완전 판매'(펀드 구조나 위험성 등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한 판매) 과실을 명백히 입증한다면 승산은 있다. 은행이 중도환매가 가능한데도 이를 알리지 않았거나,마치 원금 보장 상품인 것처럼 과장해서 판매한 경우 등이다.

◆원칙적으로 투자자 책임

15일 법원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서울중앙지법에만 펀드 관련 300여건의 소송이 제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이기는 경우는 많지 않다. 투자자들이 손실 가능성을 감수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희진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펀드는 정기예금과 달리 수익률이 높은 만큼 위험성도 그에 비례하는 게 상식적이기 때문에 법원은 투자자의 자기책임을 물어 통상 투자자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은 펀드에 투자했다 1억9000여만원을 손해 본 송모씨가 한국외환은행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지난해 7월 "송씨는 가입 당시 투자설명서를 받았고 은행이 원금 손실의 가능성 및 그 범위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특히 투자자의 투자 경험이 많고 투자한 액수가 클수록 배상받기는 어렵다. 서울중앙지법은 펀드에 투자했다 50억원을 손해 본 김모씨가 신한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지난해 6월 "원고의 투자 경력과 자산 상태,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 성향을 볼 때 원금 손실 가능성에 대해 몰랐다는 것은 납득되지 않는다"며 김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불법행위 입증이 관건

그러나 투자자가 판매회사 직원이 '불완전 판매'한 과실을 명백히 입증하면 배상을 받을 수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은행이 판매한 '우리파워인컴펀드 1 · 2호' 관련 판결이다. 서울중앙지법은 투자자들이 우리은행을 상대로 낸 수십 건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지난해 6월 "해당 펀드는 원금 전액을 손실할 수 있는 고위험 상품인데도 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며 상당수 투자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이 우리파워인컴펀드에 대해 '불완전 판매'의 책임을 비교적 폭넓게 인정한 것은 독특한 펀드 구조 때문이다. 이 펀드는 일반 펀드와 달리 분기마다 고정금리를 지급하다 만기시에 원금 손실 여부가 결정되는 펀드로,투자자들이 원금보장형 펀드로 착각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판매사 직원들은 위험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오히려 "원금 손실 가능성은 국채가 부도날 확률과 유사하다"며 과장 광고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투자자가 투자설명서에 서명했더라도 직원이 펀드 구조의 핵심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면 법원이 은행의 책임을 묻기도 한다. 청주지법은 지난달 해외펀드에 가입해 손해를 본 임모씨가 신한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은행은 선물환 계약의 구조 등에 대해 투자자가 충분히 이해했는지를 확인하지 않고 단지 서류상 필요한 부분에 신청인 날인만 받았을 뿐"이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중도환매에 대한 설명도 중요하다. 서울중앙지법은 2008년 8월 이모씨가 우리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중도환매가 가능한데도 중도환매가 불가능한 것처럼 설명한 것은 불법 행위"라며 "손실금액의 40%인 5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전액 배상 못 받을 수도

투자자가 승소하더라도 손해액 전부를 배상받은 사례는 없다. 법원이 투자자의 연령,학력,투자 경험,재산 상태에 따라 40~85% 과실상계하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신아의 이종수 변호사는 "투자자가 손해액의 50% 이상을 배상받는 사례는 매우 드물고,특히 같은 펀드에 들었다 손실을 봤더라도 나이가 적고,투자 경험이 많고,학력이 높을수록 과실 비율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특히 은행 직원이 펀드를 불완전 판매했더라도 투자자 스스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배상받을 길이 없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6월 전모씨가 기업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가 판매설명서를 제대로 교부하지 않았더라도 이는 원고가 스스로 양이 많고 귀찮다고 교부받지 않은 점이 인정된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법무법인 화우의 황혜진 변호사는 "일단 소송으로 가면 불완전 판매 책임을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펀드 가입 단계부터 사후 관리까지 투자자가 세심히 살피고 투자설명서를 챙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