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회계기준(IFRS)을 조기 도입한 기업들이 법인세 신고를 위해 기존 회계기준(GAAP)으로 작성한 재무제표를 별도로 만드느라 속을 끓이고 있다. 기획재정부에서 지난해 말 IFRS를 조기 도입한 KT&G STX팬오션 풀무원홀딩스 등 13개사에 대해 2009년 법인세 과세표준 계산 및 신고 때 기존 방식에 따라 작성한 재무제표를 첨부토록 지침을 내렸기 때문이다.

새 제도를 서둘러 도입한 결과가 '이중장부'를 만들어야 하는 부담으로 돌아온 셈이다. 아직 IFRS 관련 세제 개편이 안 된 상황에서 과세 형평성 등을 고려해 이같이 결정했다는 설명이지만,1년 동안 새 기준에 맞춰 장부를 작성해 온 기업들은 신고 기한인 오는 3월 말까지 새 장부를 만들어야 하는 실정이다.

기존 방식에 따른 회계시스템을 갖춘 STX팬오션이나 분기마다 두 가지 방식으로 결산해 온 KT&G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업체는 곤혹스럽다는 반응이다. 한 업체 회계 담당자는 "IFRS로 된 장부를 결산하기에도 인력이 부족한 현실에서 이를 다시 옛 방식으로 바꾸는 부담까지 지게 됐다"며 한숨을 쉬었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옛 방식의 재무제표를 첨부하라는 기준이라도 없애준다면 두 기준의 차이만 세무조정에 반영하면 되기 때문에 새 장부를 만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재정부에서 '첨부 재무제표'에 대해 외부감사 및 주주총회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되도록 한 것도 문제란 지적이다. 이중 감사라는 문제는 피했지만 과세기준이 되는 재무제표를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작성한 상태로 제출하게 되기 때문이다.

올해가 더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작년엔 IFRS를 조기 도입한 곳이 13개사에 그쳤지만 올해는 삼성 LG 등 대기업들이 대거 채택하면서 50개사를 훌쩍 넘길 전망이다. 올해 도입키로 한 기업의 관계자는 "정부에서 빨리 방향을 내놓아야 이중장부 작성 등의 낭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재희 기자 joyj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