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상임위원회 간 기싸움 탓에 어느 상임위에도 배정받지 못해 '갈 곳을 잃은'법안들이 수두룩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기에게 유리한 입장에서만 법안을 심의 · 집행하려는 상임위 이기주의가 그 원인이다.

국회 운영위원회는 최근 상임위 미배정 법안들을 어디에 회부할지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운영위 관계자는 5일 "지급결제제도감독법안 등 미배정 법안들이 많지만 해당 상임위 의견을 좀더 들어본 후 배정하기로 했다"며 "상임위 회부가 안 됐으니 언제 심의가 시작될지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 중 지난해 조문환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한 '지급결제제도감독법안'은 지급결제제도에 대한 관리 감독을 체계화하는 게 골자다. 금융위 소관인 정무위원회와 한국은행 소관인 기획재정위원회가 심의권을 다투고 있어 표류 중이다.

조 의원 측은 5일 "지급결제제도 관리 의무를 금융위로 통합하는 법안 내용상 정무위로 가야 한다"며 "하지만 정반대 내용인 한은법 개정안이 재정위를 통과하면서 논란이 된 것 같다"고 밝혔다. 한은법 개정안은 한국은행에 단독조사권을 부여하는 등 지급결제제도에 대한 감독권한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이다.

정무위와 재정위는 한은법 개정과 파생상품거래세 도입 등을 놓고 여러 차례 갈등을 빚어 왔다. 한나라당과 운영위원회는 지급결제제도감독법안이 본격 논의될 경우 논란이 다시 촉발될 수 있어 소관 상임위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 '사설탐정'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의 민간조사업법도 지난해 4월 제출된 이후 아직 상임위를 배정받지 못했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강성천 한나라당 의원은 "검찰과 경찰 중 어디에 민간조사업 허가권을 주느냐를 놓고 행정안전위와 법사위가 대치하고 있다"며 "행안위에 비슷한 내용의 경비업법이 계류돼 있어 지난 17대 때처럼 법안이 아예 폐기될지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발의된 지식재산기본법안은 지식경제위와 정무위가 눈독을 들이고 있다. 지경위는 지난 17대 국회에서 같은 법안이 산자위(현재 지경위)로 회부된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정무위는 산업 차원을 넘어선 국가적 전략이 필요한 만큼 총리실 쪽에서 주관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이다. 뷰티디자인산업진흥법은 뷰티산업을 '산업'(지경위)과 '보건'(보건복지위) 중 어느 차원에서 볼 것인가를 두고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국회 의안과 관계자는 "상임위 간 밥그릇 싸움 때문에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한 법안이 있어도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며 "최종 배정권을 가진 운영위원회도 미적대고 있어 결국 법안 자체가 잊혀지고 폐기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