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식 법무법인 세종 대표(53)는 올초 시무식을 가수 원더걸스의 공연 동영상으로 대신했다. 가수 겸 연예기획사 JYP엔터테인먼트 대표를 맡고 있는 박진영씨도 화면에 나타났다. 원더걸스의 미국 진출을 앞두고 한 방송사와 인터뷰하는 장면이었다. "연예계는 센 물살 같아요. 제 자리에 서 있으면 밀려내려가요. 진짜 열심히 앞으로 가려고 해야만 그나마 조금씩 나아갈 수 있어요. "

시무식에 참석한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 엄숙하고 딱딱한 분위기 속에 진행돼오던 예년의 시무식 풍경과는 딴판이었기 때문이다. 동영상이 끝나자 김 대표가 마이크를 잡았다. 음성은 나지막했지만 여느 때보다 힘이 실려 있었다.

"로펌의 현실을 간파하고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혜안이 담겨 있지 않습니까? 뼈 빠지게 올인해야만 겨우 앞으로 나갈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낙오되고 말 겁니다. "

◆다시 술을 마시는 이유

2006년 8월 국내 5대 법무법인의 하나인 세종의 사령탑을 맡은 김 대표는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인물로 꼽힌다. "일본 사무라이 같다"는 게 후배 변호사들이 받은 인상이다. 일 처리는 완벽하다 못해 비장하기까지 하다고 한다. 실제 눈매가 날카롭고 후배에게도 엄한 편이다. 10년 전부터는 술자리에도 가지 않았다.

그랬던 김 대표가 요즘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후배 직원들과 거리가 너무 멀어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표 취임 이후 인재 영입과 시스템 정비,회사 덩치를 키우는 일에 매달리다 보니 스스로 너무 삭막해졌어요. 말을 안 해도 직원들이 제 진심을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착각이었어요. 대화가 없으면 이해와 소통도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죠."

예전처럼 일방적으로 직원들을 호통치는 일도 자제한다. 순간적으로 격한 감정이 일어도 그 자리에서 표출하지 않고 나중에 대화를 통해 풀어나간다고 한다. 사내 커뮤니케이션도 이메일은 가급적 자제하고 직접 얼굴을 보고 말하는 편이다.

◆"믿을 건 나 자신뿐"

김 대표가 엄숙주의에 가까울 정도의 성향을 갖게 된 것은 가난했던 어린시절과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는 2개의 트랙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3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가세가 기울자 어머니는 어린 김 대표를 외갓집에 맡겨두고 서울의 한 여관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어느 날 외갓집을 떠나 기차를 타고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찾아갔을 때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리고선 주인 눈치를 보며 어디선가 찬밥을 구해 수돗물에 말아주었다. "지금도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어요.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두고 있습니다. "

요즘도 김 대표는 남은 음식을 보면 죄를 짓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학창시절 김 대표는 어머니에게 효도할 수 있는 길은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를 악물고 매달린 끝에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고,졸업 전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돌이켜 보면 참 외로웠던 시절이었어요. 주변에 기댈 곳도 별로 없었고요. 그래서 스스로 '믿을 것은 나 자신밖에 없다'는 얘기를 끊임없이 되뇌었지요. "

그랬던 김 대표가 홀어머니의 소원이었던 판사의 길을 뿌리치고 변호사를 선택한 것은 평소 믿고 따르던 선배들의 권유 때문이었다. 사법연수원을 졸업할 즈음 세종 창립자인 신영무 변호사로부터 "판사 할 사람은 많으니 나와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게 됐다. 판사를 선택할 작정이었던 터라 고민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당시 법대 교수였던 고 백충현 교수까지 변호사를 권하자 마음을 바꿨다. 당시 백 교수는 "판사는 정해져 있는 걸 할 뿐이고 평균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하는 게 오히려 낫다"며 "패기와 도전정신이 있고 판을 바꿔보고 싶다면 변호사를 지망하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스타 변호사에서 경영자로

변호사로서 그의 운명을 바꾼 것은 1986년 세종에 합류한 지 4년 만에 떠난 해외연수였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국제 비즈니스의 세계에 눈을 뜬 것.1997년 말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가 터지자 본격적으로 활동 무대를 넓혀나갔다. 한라제지 대농 한화종금 등에 대한 인수 · 합병(M&A)업무 등 대형 경제사건을 도맡아 처리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유럽연합(EU)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국내 조선회사들을 제소한 사건을 승소로 이끌었을 때는 일약 법조계의 스타 변호사로 떠올랐다. "소송에서 질 경우 무려 4조원을 EU 측에 반환해야 할 절체절명의 상황이었어요.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조선산업 발전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지요(웃음)."

김 대표는 자신의 이런 경험을 살려 후배 변호사들에게 최소한 2개 이상의 전문분야를 확보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래야 특정 분야의 부침에 상관없이 자신의 몸값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법조계 내에 손꼽히는 '트렌드 세터(trend-setter)'이기도 하다. 3년 전부터 새로운 인재 영입과 적극적인 M&A에 나서면서 업계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지난해 말부터는 특급 전관이 즐비한 송무중심 로펌 바른과 합병을 공식 선언하고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다. 합병이 성사되면 변호사 약 300명을 보유한 국내 2위권 로펌으로 부상해 1위 김앤장을 턱밑까지 추격하게 된다.

◆"박진영에 강한 동지애 느껴"

하지만 김 대표는 바른과의 합병이 끝은 아니라고 했다. 대형화는 특급 로펌으로 가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그저 생존 요건에 불과하다는 것.따라서 대형화와 전문화를 병행하는 전략이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한 분야에 특화된 로펌도 장기적으로는 생존 가능성이 불투명하다고 봐요. 여러 분야에 특화된 그룹을 종합병원식으로 구축하면서 각 그룹의 전문가를 지속적으로 늘려야만 경쟁력이 생길 겁니다. " 세종이 최근 에버그린과 합병을 통해 부동산 전문인력을 다수 확보한 데 이어 오는 3월 중국 상하이에 20여명의 변호사들로 구성된 별도 팀을 꾸리는 배경이다.

김 대표는 변호사가 한때 최고의 엘리트 직업이었지만,조금만 삐끗하면 '법을 파는 장사꾼'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위기 의식을 갖고 있다. 시대 변화에 따라 업(業)에 대한 개념과 접근하는 자세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예전 같으면 박진영씨도 일개 연예기획사 사장으로 봤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한 분야에서 처절하게 올인하고 있는 사람으로 비쳐지지요. 그런 모습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아니겠어요? 제가 일면식도 없는 박진영씨에게 동지애를 느끼는 건 이런 까닭에서입니다. 덕분에 원더걸스의 현란한 춤까지 눈에 들어와요. "

김 대표는 한국 변호사들에게 가장 부족한 덕목으로 인문학적 소양을 꼽는다. 상대방을 설득하려면 호감을 줘야 하고,호감을 주려면 인문학적인 지식과 교양이 필요한데,법 조문에만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김 대표는 이 때문에 지난해 말 각 고객사 CEO(최고경영자)들과 모여 음악이나 미술에 관해 토론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최근 이 모임은 경기도 구리시의 건원릉(태조릉)을 찾아 조선 건국 과정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살다 보면 역사와 예술을 통해 영감을 받는 경우가 참 많아요. 인간세상의 부침,수많은 제국들의 흥망성쇠를 들여다보면 최근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토로했던 '10년 뒤 삼성 구멍가게론'에도 공감이 가지요. "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