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상급 고기능 기계식(하이 컴플리케이션 · High Complication) 시계의 진수를 보여줬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20회 국제고급시계박람회'(SIHH · 18~22일)를 둘러본 시계 바이어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스위스 리치몬트그룹이 주최하는 SIHH는 '바젤월드'와 함께 최신 트렌드를 보여주는 양대 시계박람회로 꼽힌다. 바젤월드는 입장권만 사면 누구나 볼 수 있지만 SIHH는 참가 브랜드들이 사전에 초대한 바이어와 소수의 초특급고객(VVIP),언론만 입장할 수 있다.

◆부스마다 북적,활기 되찾아

SIHH는 바젤월드처럼 매년 4월에 열렸지만 지난해부터 1월로 앞당겼다.

바젤월드와 차별성을 부각시키고 바이어들의 주문을 선점하겠다는 심산이었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세계적인 불황의 여파로 주수요처인 미국,일본의 바이어들이 대폭 줄어 참관객 수가 전년보다 15%가량 줄어든 1만2000명에 그쳤기 때문.

하지만 올해는 부스마다 바이어들로 넘쳐났다. 파비엔느 루포 SIHH 대변인은 "작년 10월부터 경기가 차츰 살아나면서 시계 시장도 회복세"라며 "올해 관람객 수는 2008년 수준인 1만4000명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흥 명품 브랜드인 '리처드 밀'과 '그뢰벨 포지'가 올해 새로 참가해 전시업체 수도 19개로 늘었다.

◆더 복잡해지고 얇아져

전통은 깊지 않지만 뛰어난 기술력으로 마니아층이 형성된 '젊은 브랜드'들이 신규회원 자격을 얻은 것은 SIHH의 기술 지향성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특히 그뢰벨 포지는 최고급 기술로 꼽히는 '투르비옹'(중력 오차를 줄여주는 장치)을 2개 달고 크로노그래프(시간 · 속도 · 거리 측정기능) 등 고기능 장치를 4개나 장착한 일명 '쿼드러플' 시계를 선보여 주목받았다.

이처럼 한 개를 달기도 힘든 특수기능 장치를 여러 개 부착하고 화려한 장식 · 세공으로 예술성을 가미한 시계들이 올해 유독 많이 등장했다. 예거 르꿀뜨르는 별자리를 세밀하게 그려넣은 다이얼에 미닛 리피터(시 · 분을 소리로 알려주는 기능)와 투르비옹을 장착한 '천체'시계를 선보였다. 가격은 5억원대로 가장 비싸다. IWC도 베스트셀러 '포르투기즈' 시리즈에 투르비옹을 장착한 신제품(6900만원)을 처음 내놨다.

화려한 여성용 보석시계로 유명한 까르띠에는 자체 개발한 무브먼트(시계 동력장치)를 단 남성용 시계 시리즈를 처음 선보였다. 부품을 최소화해 시계 내부가 훤히 보이도록 만든 '스켈레톤' 기술과 투르비옹이 둥둥 떠다니는 듯한 '플라잉' 기술을 접목한 제품도 내놓았다. 이 시리즈는 오는 4월 초 국내에 들어온다.

두께가 2㎜대에 불과한 초박형 시계도 주목을 끌었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울트라신'은 두께가 2.45㎜,피아제의 '앨티티아노'는 2.35㎜다.

제네바(스위스)=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