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며칠 잠을 못 잤는지 눈 밑엔 다크서클이 가득하다. 얼굴은 있는 대로 굳었고 눈은 어디를 향해야 할지 몰라 허둥댄다. 왜 안 그러랴.그토록 원하던 취업이 눈앞까지 다가온 2차 면접인데.얼마 전 KOTRA 신입사원 선발을 위한 최종면접에 참여했다. 임원들로 구성된 면접위원에 외부인으로 포함된 건 여성인 덕이었으리라.

KOTRA의 사원 선발은 까다롭다. 토익(토플)점수를 기록하고도 필기시험(외국어 · 선택 · 논문)과 회화 테스트,인 · 적성 검사,실무자 면접과 최종 면접,프레젠테이션까지 일곱 과정을 거친다. 청탁이 끼어들 여지라곤 없다. 세계 각지에서 한국의 무역 및 투자 유치를 지원해야 하니 어줍잖은 실력으론 어림도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흠 잡을 데 없는 스펙과 필기시험으로 검증된 실력에 상관없이 면접 장소에 나타난 그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남녀 모두 검정 수트와 흰 셔츠(블라우스)에 검정 구두,모르는 사람이 보면 단체 조문객인가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여성 응시자 대부분은 머리를 뒤로 묶고 망으로 감싸는,이른바 스튜어디스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더 이해하기 힘든 건 천편일률적인 대답이었다. 윗사람이 틀린 말을 하거나 잘못된 요구를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엔 '경험과 연륜이 높은 윗분의 말씀이니 귀담아 듣겠다',개인 약속이 있는데 부서 회식이 잡히면 어떻게 하겠느냐엔 '개인 약속을 취소하겠다',라이벌과 어떻게 지냈느냐엔 '먼저 손 내밀고 양보해 사이좋게 지냈다'로 답하는 식이다.

정답이 있다고 믿는 게 틀림없었다. 정답 같은 건 없다고 일러도 소용 없었다. 어디선가 소원수리에 넘어가면 안 된다고 단단히 주입시킨 모양이었다. 당황스러운 건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상당수 응시자가 답을 써서 외운 듯 "저는 어찌어찌 하여서,하였으며,하였습니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질문과 다른 답을 내놨다.

면접도 시험이니 대비해야 할 것이다. 실제 취업준비생들은 면접까지 동아리를 꾸려 함께 준비한다고 한다. 그러나 면접 복장과 대답 내용에 정해진 틀과 정답이 있으리라 믿고 거기에 자신을 끼워맞추며 일상생활에서 쓰지도 않는 어투를 사용하는 건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렵다.

검정 수트에 스튜어디스 머리가 KOTRA 응시생만의 차림은 아닐 것이다. 갑자기 팀 회식이 생겨도 개인적인 선약을 깨고 참석하겠다는 식의 답변도 마찬가지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무슨 이유로 뛰어난 인재들이 자기 생각에 상관없이 어디선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주는 대로 따라해야 한다고 여기게 된 걸까.

리쿠르팅업체가 국내 주요 대기업들에 바람직한 인재상을 물었더니 대부분 창의적 인재를 첫째로 꼽았다고 한다. 글로벌 역량과 전문성,도전정신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창의성이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 취업지망생들은 왜 붕어빵 같은지 알 길이 없다.

임지순 서울대 석좌교수가 '10학번' 새내기들에게 대학생활 중 길러야 할 세 가지로 창의력,실력,톨레랑스(관용)를 꼽았다는 것은 이 같은 문제의 해결책을 알려준다. 창의력의 경우 계발법은 없지만 가로막는 법은 있는데 다름 아닌 꽉 짜인 삶을 사는 거라며 그러지 말고 여유를 가지라고 했다는 건 특히 그렇다. 실력으로 전공지식 외에 외국어 능력과 체력을 함께 든 것과 톨레랑스를 "단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걸 넘어 인간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다른 의견을 용인할 수 있는 마음"이라고 정의한 것도 마찬가지다.

창의력과 상상력도 훈련되지 않으면 발현될 수 없다. 스펙을 쌓느라 교양서적 한 권도 못 읽고 어떻게든 취업하려는 절박함에 정답이라고 돼 있는 걸 달달 외우느라 심신을 허비하는 이들을 양산하는 사회에 창의성과 상상력이 설 자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