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새마을 운동과 녹색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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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주년 개발경험 환경운동의 원조
노하우 살려 미래산업 주도권 잡길
노하우 살려 미래산업 주도권 잡길
2008년 2월11일은 글로벌 화두인 기후변화와 관련해 한 획을 그은 날이다. 이날 리처드 브랜슨 영국 버진항공그룹 회장은 뉴욕 유엔총회 기후변화회의 직후 2500만달러(약 300억원)를 내놓으며 기후변화기금을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G20가 매칭펀드를 만들어 모두 5억달러(약 6000억원)의 기금을 마련하자는 내용이었다.
버진그룹이 기후변화 대안기술을 위해 이처럼 '기후상'을 제정키로 한 것은 지구온난화 방지,저탄소,대체에너지 기술 등 다양한 신기술 개발에 대한 지구촌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다. 브랜슨 회장은 기후변화는 세계1차,2차 대전을 합친 것보다 더 큰 '전쟁'이라며 전 세계가 공동대안을 마련하는 등 '전쟁 내각'을 만들 것을 주장했다. 전쟁 내각에서 업무를 맡을 사무국을 만들어 현존하는 기후변화 관련 신기술을 총집합하고 에너지절약 기술개발,데이터 총집합 등 지속발전 가능한 인류를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당시 제롬 글렌 밀레니엄 프로젝트 회장은 브랜슨 회장과의 대화를 통해 유엔은 전쟁을 막는 곳이라는 점을 들어 '기후변화 전쟁내각(War Room)'이라는 용어를 '상황실(Situation Room)'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또한 유엔미래포럼에서 기후변화와 관련한 모든 상황을 종합하는 종합상황실을 설립할 것을 역설했다.
이후 유엔기후변화상황실을 어디에 설치할 것이냐를 두고 핀란드,벨기에,말레이시아 등 여러 국가가 경쟁에 나섰으나 최종적으로 지난해 7월 유엔미래포럼 지부회의에서 한국 김천으로 결정했다. 물론 그 유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세계 녹색성장을 확고하게 주도하기 위해선 녹색성장의 오랜 역사를 거론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었다. 핀란드 등 유럽의 경우 이미 기후변화 녹색이야기와 관련, 20~30년의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한국으로선 큰 핸디캡이었다. 당시 필자에게 번개같이 떠오른 생각이 녹생성장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우리 새마을운동이었다.
새마을운동에는 세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비사가 있다. 사회학자로서 미래학의 원조이며 세계적인 석학인 허만 칸 박사(1922~1983)는 1961년 허드슨연구소 회장 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은밀히 한국을 들락거렸다. 당시 허만 칸의 제자로 연구소 연구원이었던 제롬 글렌 회장이 훗날 유엔미래포럼을 창설한 뒤 밝힌 내용이다. 허만 칸은 박 대통령에게 미래 성장동력에 관한 다양한 제언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도시 노동자를 대신할 농어촌 노동력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72~1977) 때로 도시 노동자들의 노동인권 문제가 사회 이슈로 부각되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그 대안으로 나온 게 새마을운동이다. 도시 노동자 운동에 대비한 것이 농촌개발을 비롯해 기후변화 환경오염 대비로 선회해 한국 선진화운동, 즉 새마을 운동으로 거듭난 것이다. 새마을운동의 로고나 유니폼 등이 모두 녹색으로 돼 있고,초가지붕을 헐고 에너지절약용 슬래브를 얹어 생산적 환경운동을 펼쳤다는 사실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바로 '녹색성장'을 이룬 것이다. 허만 칸이 조언한 녹색성장이 곧 새마을운동이고 따라서 한국이 원조라는 말은 참가국들의 공감을 이끌어냈고 덕분에 경쟁국을 물리치고 지난해 8월 김천에 세계기후변화상황실이 설립될 수 있었다.
미래예측 전문가들은 2030년이 되면 지구촌 인구 절반이 기후변화와 관련된 산업으로 먹고 살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물 부족,환경오염,대체에너지 개발 등이 미래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우리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새마을운동이 올해 40주년이 된다. 그 성과와 노하우를 집대성해 국제사회로 확산시키려는 노력이 지금 경상북도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대통령 한 명이 천명하는 운동보다 국민 각자가 기후변화 녹색성장의 활동을 벌여야 세계기후변화 종주국이 될 수 있다.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대표
버진그룹이 기후변화 대안기술을 위해 이처럼 '기후상'을 제정키로 한 것은 지구온난화 방지,저탄소,대체에너지 기술 등 다양한 신기술 개발에 대한 지구촌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다. 브랜슨 회장은 기후변화는 세계1차,2차 대전을 합친 것보다 더 큰 '전쟁'이라며 전 세계가 공동대안을 마련하는 등 '전쟁 내각'을 만들 것을 주장했다. 전쟁 내각에서 업무를 맡을 사무국을 만들어 현존하는 기후변화 관련 신기술을 총집합하고 에너지절약 기술개발,데이터 총집합 등 지속발전 가능한 인류를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당시 제롬 글렌 밀레니엄 프로젝트 회장은 브랜슨 회장과의 대화를 통해 유엔은 전쟁을 막는 곳이라는 점을 들어 '기후변화 전쟁내각(War Room)'이라는 용어를 '상황실(Situation Room)'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또한 유엔미래포럼에서 기후변화와 관련한 모든 상황을 종합하는 종합상황실을 설립할 것을 역설했다.
이후 유엔기후변화상황실을 어디에 설치할 것이냐를 두고 핀란드,벨기에,말레이시아 등 여러 국가가 경쟁에 나섰으나 최종적으로 지난해 7월 유엔미래포럼 지부회의에서 한국 김천으로 결정했다. 물론 그 유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세계 녹색성장을 확고하게 주도하기 위해선 녹색성장의 오랜 역사를 거론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었다. 핀란드 등 유럽의 경우 이미 기후변화 녹색이야기와 관련, 20~30년의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한국으로선 큰 핸디캡이었다. 당시 필자에게 번개같이 떠오른 생각이 녹생성장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우리 새마을운동이었다.
새마을운동에는 세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비사가 있다. 사회학자로서 미래학의 원조이며 세계적인 석학인 허만 칸 박사(1922~1983)는 1961년 허드슨연구소 회장 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은밀히 한국을 들락거렸다. 당시 허만 칸의 제자로 연구소 연구원이었던 제롬 글렌 회장이 훗날 유엔미래포럼을 창설한 뒤 밝힌 내용이다. 허만 칸은 박 대통령에게 미래 성장동력에 관한 다양한 제언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도시 노동자를 대신할 농어촌 노동력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72~1977) 때로 도시 노동자들의 노동인권 문제가 사회 이슈로 부각되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그 대안으로 나온 게 새마을운동이다. 도시 노동자 운동에 대비한 것이 농촌개발을 비롯해 기후변화 환경오염 대비로 선회해 한국 선진화운동, 즉 새마을 운동으로 거듭난 것이다. 새마을운동의 로고나 유니폼 등이 모두 녹색으로 돼 있고,초가지붕을 헐고 에너지절약용 슬래브를 얹어 생산적 환경운동을 펼쳤다는 사실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바로 '녹색성장'을 이룬 것이다. 허만 칸이 조언한 녹색성장이 곧 새마을운동이고 따라서 한국이 원조라는 말은 참가국들의 공감을 이끌어냈고 덕분에 경쟁국을 물리치고 지난해 8월 김천에 세계기후변화상황실이 설립될 수 있었다.
미래예측 전문가들은 2030년이 되면 지구촌 인구 절반이 기후변화와 관련된 산업으로 먹고 살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물 부족,환경오염,대체에너지 개발 등이 미래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우리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새마을운동이 올해 40주년이 된다. 그 성과와 노하우를 집대성해 국제사회로 확산시키려는 노력이 지금 경상북도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대통령 한 명이 천명하는 운동보다 국민 각자가 기후변화 녹색성장의 활동을 벌여야 세계기후변화 종주국이 될 수 있다.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