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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에세이]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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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 눈이 온천지를 감싸안은 지난 5일 아침 11시 즈음 대학 교정에 교수님을 뵈러 갔다. 눈 덮인 캠퍼스를 조심스레 걷고 있는데 동행인이 옆구리를 꾹꾹 찌른다. 시선이 머문 하얀 운동장 가운데 '은영♡현수'가 크게 보인다. 발자국도 없는 저 넓은 장소에 어떤 마음으로 저 글자 발자국을 남겼을까. 무척 예뻐 보인다.

    한 심리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이름은 그 자신에게 가장 익숙하고 달콤한 언어라고 한다. 현대인들은 빈번한 교류를 하고 있다. 가끔은 상대방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난감할 때도 종종 있고 큰일을 그르치는 사례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필사적인 노력으로 자신의 이름을 기네스북에 올리는가 하면,아슬아슬한 계곡바위에 이름을 새기는 '수고'를 하기도 한다. 사람이든 제품이든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브랜드화하려는 강한 의지는 모두 갖고 있다. 그래서 '잘 지은 이름 하나 열 상품 안 부럽다'는 말도 있다. 제품의 브랜드 네이밍은 기억과 연상을 통해 고객의 신뢰를 증진시키고 지속적인 고객유지의 수단이 되기에 기업은 큰 돈을 들여가며 광고와 홍보를 한다.

    문자인식 전문기업의 브랜드를 갖고 있는 필자의 회사에서 연구소장 겸 대표이사,마케팅 전담자였던 창업주의 갑작스런 유고는 회사의 파산을 의미했다. 그러나 삶의 동반자였던 필자는 창업주의 꿈과 열정,피눈물을 잘 알고 있었기에 사업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유일한 생존 방법은 히트상품 제조란 단순한 생각을 갖게 됐고,이때부터 명함자동인식기인 '하이네임'을 개발했다. 그러나 이를 브랜드화하기 위한 나의 행동은 막무가내였다. 자다가도 깨우면 "네,하이네임 송은숙입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다행히 여러 언론의 도움으로 보도기사가 나가고 신뢰가 쌓이면서 소비자들의 입에서 우리 제품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이후 업그레이드와 서비스를 강화하고 인맥관리솔루션도 공급하게 됐다. 지금도 "아~,하이네임 사장님!" 이라고 말씀하시는 지인들을 볼 때면 눈물이 날 만큼 고맙다.

    끌어당기는 힘이 브랜드 만들기의 열쇠다. 그러나 브랜드 네이밍의 주인은 내가 아닌 상대방이고 고객이다. 개인과 기업에서 내세우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고객들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 이미지의 격차를 최소화해야 하는 힘겨운 노력이 있어야 이뤄진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브랜드경영은 고객의 관점에서 잠재적 욕구까지 파악할 수 있는 통찰력과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할 수 있어야 되는 것이리라.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고통이고 무관심 속에 메말라가는 죽음을 의미한다. 자신의 이름을 사랑하자.그리고 사랑 받는 나의 전문화된 브랜드를 만들고 경영하자.죽음이 반기는 어느 날 "차별화된 제 삶의 가치는 달콤한 언어인 제 이름에 담겨 있어요"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다. 거울 앞에 멋진 여인이 웃고 있다.

    송은숙 한국인식기술 대표 ses@hi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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