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니 문득 우리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떠오른다. 정치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하는 문제다. 정치란 권력을 잡기 위한 게임인가,아니면 자신의 권력의지를 사정없이 불태우겠다는 몸부림인가. 그렇지 않으면 가문의 영광을 빛내는 일인가. 우리정치에 잊지 못할 코미디가 있다. 회기 중에는 여야 의원들이 조직폭력배들의 싸움을 무색케 할 정도로 치고 받고 싸우다가 막상 회기가 끝나면 언제 싸웠냐는 듯 어깨를 나란히 하고 외유를 떠나는 것이다. 건망증이 심해서 그런 것인가,정치 9단이라 그런 것인가. 혹은 정치란 한편의 연극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것인가.

우리 정치는 너무나 살벌하다. 여야가 춤을 추기는 고사하고 싸움으로 밤낮을 지새운다. 혹시 춤을 춘다고 할 때는 흡사 늑대와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정치를 바라볼 때도 하도 아슬아슬하여 국민들은 언제나 손에 땀을 쥘 수밖에 없다. 세종시 수정안 문제로 여당 내에서 친이와 친박계 국회의원들이 일전을 불사할 태세고 4대강 문제를 가지고 여야가 사생결단식의 싸움을 벌인지는 한참 되었다. 작년 전반기만 해도 미디어법을 가지고 얼마나 여야가 볼썽 사납게 다투었나. 특히 미디어법 통과에 항의하여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한 민주당의 세 사람은 급기야 국회의장실로 쳐들어가 그곳에서 농성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는 엊그제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 회의에서 보기 드문 광경을 목격했다. 사채 때문에 고생하다가 정부의 도움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 한 서민이 그 사연을 이야기하다가 목이 메어 울먹인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던 이명박 대통령도 눈시울을 붉혔다. 또한 그 자리에 참석했던 일반시민들 사이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감동스러운 모습이었다.

정치인들이여! 이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가. 우리 정치인들이 눈물을 잊어 버린 지는 오래 됐다. 간혹 선거 때는 낮은 지지율에 속이 상해 눈물을 흘리는 정치인도 있으나,권력을 잡고 나면 눈물과는 담을 쌓는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언제나 서러운 눈물이 있게 마련이고 이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바로 정치의 소명일 터이다.

막스 베버와 같은 학자는 정치를 '악마와의 계약'이라고 했지만,사실 나쁜 일을 하기 위해서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정치학개론 시간이나 정치학 교과서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진실이 있다면,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정치라는 것이다. 우리 정치인들은 정치를 한다고 하면서 그저 "내편이 아니면 적"이라고 외치며 상대편의 멱살을 잡고 고성을 지르며 결투하는 법만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누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도 무심하게 되고 또 아예 남의 눈물을 닦아주는 법조차 잊어버린 것이다.

최근만 해도 그렇다.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를 놓고 국회의 교육과학기술위원회가 여야로 나뉘어 입씨름만 벌이다 2월 국회로 미뤄놓는 바람에 등록금 마련에 차질을 빚게 된 80만 학생들의 딱한 처지를 생각해보라.지금 이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다. 이들이 소리내어 외치지 않아도 소리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정치의 역할인데,"지금이라도 정신차리라"는 여론의 따가운 아우성을 듣고 비로소 움직이고 있다. 이렇게 굼뜨게 행동하고 있으니 필요할 때 제자리에 없는 '알리바이 국회'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이제 경인년 새해의 소망이 있다면 정치에서 눈물을 보고 싶고 또 눈물을 닦아주는 모습도 보고 싶다는 것이다. 명동 은행회관에서 우리가 본 서민의 눈물과 그 눈물을 닦아주던 대통령의 모습이 정치의 화두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박 효 종 서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