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가누지 못하는 한 생애처럼/문풍지 사이로 겨울설악은 함부로 출렁거렸다/풍경에 적응하려는지 눈동자도 이리저리 굴려다녔다//산 속의 어둠은 지난 생의 한 철보다도 먼저 잠든다/문득,/세파가 밀려오는 것인지/훅하고 눈바람이 지나간다//봄을 탐하는 건 사치다. '(<달만 살이 찐다> 중)

두 번째 시집 《고의적 구경》을 펴낸 고철씨(48)는 사연 많은 시인이다.

어린 시절 강원도 춘천의 한 시설에 어린 그를 맡기며 "며칠 후에 데리러 오겠다"고 했던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혈혈단신 고아가 된 그는 4년 전에 낸 첫 시집 《핏줄》에 어릴 적 자신의 사진과 보육원의 서류,당시 정황을 공개하며 가족을 찾으려 애썼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필명인 '고철'은 자신의 본명을 정확히 모르는 그가 어릴 때 가족과 살던 고향 철원을 떠올려 지은 것이다. 그는 "첫 번째 시집은 부모를 찾아야겠다는 집념이 담긴 '찌라시' 성격이었지만 이번 시집은 작품으로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 이번 시집도 내 뿌리를 찾는 일의 일환"이라며 "훌륭한 시인이 되어 필명을 날리면 가족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시를 '노가다 하고선 품삯 못 받고도 본전 뽑을 수 있는 놀이'라고 표현한 그는 "시를 쓰면서 나를 치유하고 남을 용서하게 됐다"고 했다. "회사생활을 하던 1980년대 명절 때 '고향에 가십니까'란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아,예'라고 대답하며 넘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쌓인 외로움을 시를 통해 풀었고,덕분에 투박하게 살아왔던 제가 순화된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페인트공으로 일하면서 받아야 할 돈을 뜯기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요.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상대방의 처지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 그는 이번 시집 제목에 대해 "앞으로 삶을 능동적으로,자의적으로 보겠다는 반어적인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