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펀드들이 '국채 엑소더스'에 나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5일 "세계 최대 채권펀드인 핌코와 블랙록,베어링스 애셋매니지먼트 등이 미국과 영국 국채 보유 비중을 줄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영국이 구제금융과 경기부양을 위해 천문학적인 규모의 국채를 찍어내면서 국채값 급락(수익률 급등)이 예상되는 데다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등 눈덩이 나랏빚이 경제의 발목을 잡는 시한폭탄으로 등장한 데 따른 것이다.

◆'국채 엑소더스' 나선 큰손

전 세계에서 94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운용하는 핌코는 자체 보고서에서 "통화확장 정책 종료가 임박하면서 사상 최대 규모로 발행된 미국과 영국의 국채 수익률이 급등할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금융위기가 터진 뒤 각각 7870억달러와 200억파운드(약 322억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경기부양에 쏟아부은 미국과 영국은 대부분의 재원을 국채를 팔아 충당했다.

지난해 미국과 영국의 국채 발행 순증액은 약 1조630억달러와 1700억달러에 달했다. 세계 전체로는 2007년 6월부터 작년 6월까지 총 7조달러(국제결제은행 집계 49개국 기준)의 국채가 순증했다.

실제로 미국과 영국의 국채(10년 만기 기준) 수익률은 2008년 최저점인 연 2.05%와 3.02%에서 현재 3.02%와 3.96%로 크게 올랐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영국 정부가 부채 상환을 위해 국채 발행을 더 늘리면 수익률이 올 한 해만 2%포인트 더 오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블랙록은 유러피언펀드의 미 · 영 국채 비중을 2년래 최저 수준으로 낮췄으며 베어링스 애셋매니지먼트 등 다른 대형 투자펀드도 수익률 상승세를 염두에 두고 국채 매도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다. 큰손들의 국채 탈출 러시는 국채 가격 급락을 부채질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어 시장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각국이 긴축 통화정책에 돌입,국채 금리 상승 방어를 위해 대규모 국채를 되사주는 바이백(Buy Back) 프로그램을 종결하면 국채 시장 붕괴는 가속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국채의 덫에 빠진 각국 정부

문제는 가뜩이나 재정적자와 국가부채에 시달리는 각국 정부에 국채가 또 다른 뇌관으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는 점이다. 국채 수익률 상승은 어마어마한 국채를 발행한 각국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 이자 비용을 증가시키고,시장금리 상승을 촉발해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를 위축시키는 연쇄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지난해 세계 각국의 재정적자 규모는 사상 최대로 불어났다. 세계통화기금(IMF)은 최근 보고서에서 "선진국의 재정적자 규모가 금융위기 이전의 7배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12.5%인 1조7000억달러 규모로 치솟았고 영국(GDP의 11.6%),일본(10.5%) 등도 재정 상황이 심각하게 악화됐다.

그리스는 GDP의 12.7%에 달하는 재정적자로 무디스 피치 등 3대 신용평가사로부터 국가신용등급이 줄줄이 강등당하며 국가부도 위험까지 고조되고 있다. 국채 발행 남발로 국가 부도위험을 나타내는 국채 CDS(신용부도스와프) 프리미엄이 급상승,그리스의 국가신인도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현재의 수익률 상승은 투자자들의 이익 실현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으로 국채 시장 붕괴 조짐은 기우에 불과하다"며 "국채값이 싼 지금이 오히려 투자 적기"란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김미희 기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