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동·낙랑役은 '毒이 든 성배'…매혹적이지만 연기 까다롭죠"
연극 '둥둥 낙랑 둥'의 주인공 호동과 낙랑 역은 '독이 든 성배'로 불린다. 배우라면 누구나 맡고 싶을 정도로 매혹적이지만 극적인 연기의 반전이 많아 작은 실수도 크게 보이기 때문이다.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내년 1월6~14일)에 오를 '둥둥 낙랑 둥'의 호동역 이지수씨(40)와 낙랑역 곽명화씨(35)도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가 망가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은 "실제 공연에서는 근래 흔치 않은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금세 웃었다.

이 작품은 국립극장이 두 번째로 선보이는 국가브랜드 공연으로 내년 '2010 서울시어터 올림픽스'에 한국 대표로 참가한다. 원작은 최인훈의 희곡.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설화를 비틀고 재해석한다. 낙랑공주의 일란성 쌍둥이가 호동왕자의 계모였다는 설정에 호동과 낙랑,호동과 계모 사이의 사랑과 욕망이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그린다.

연극 '산불''세자매' 등으로 주목받은 곽씨는 낙랑을 비롯해 호동의 계모인 왕비에다 고구려의 주몽신과 접신하는 어미무당 역까지 연기한다. 장면마다 다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대목에서 왕비로서 호동왕자를 위해 낙랑의 모습을 보여주고 제의를 지낼 때는 무당으로 돌변해 주몽신이 된다. 곽씨는 "배우로서는 세 역할을 한 번에 하는 것이 큰 매력"이라면서도 "분량은 물론 안무도 많아 벅차긴 하다"고 토로했다.

연극 '별방''비정규 식량 분배자' 등에 출연하며 연극판에서 잔뼈가 굵은 이씨도 이번 공연에서 비슷한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 호동은 왕비가 낙랑으로 바뀌는 역할놀이를 할 때마다 약에 취하듯 왕비에게 빠졌다가 순간 헤어나오는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이씨는 "극 중 호동은 낙랑을 죽였다는 죄책감으로 불면증에 시달리며 환청,환시 등의 증상도 겪는다"며 "실제로 겪어보지 않은 행동을 연기하는 게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이처럼 무거운 짐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매력이 넘치는 공연"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씨는 "그리스 비극의 요소들을 극에 잘 버무려냈고 우리 안의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자기희생적인 사랑까지 담아냈다"고 설명했다. 곽씨는 "우리는 지금 호동과 낙랑같은 정열적인 사랑을 잊고 사는데 호동같은 남자가 있다면 바로 결혼하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두 배우는 이번 작품에서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 이씨는 곽씨의 대본을 가리키며 "명화는 연출가의 어떤 요구나 멘트도 꼼꼼히 적는 성실한 배우"라며 "비온 뒤 죽순이 쑥쑥 자라듯 리허설을 할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고 칭찬했다. 이에 대해 곽씨는 "머리가 좋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며 "오빠의 풍부한 성량,안정감 있는 발성,정확한 발음이 부럽다"고 화답했다.

이번 공연에서 이씨와 곽씨 외에도 이상직씨와 계미경씨가 호동과 낙랑역을 번갈아 연기한다. (02)2280-4115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