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군은 최근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3(PS3) 2200대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PS3에 탑재된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연결해 슈퍼컴퓨터를 만들기 위해서다.

레이더 장비를 개발하는 데 쓰이는 이 슈퍼컴퓨터 제작비용은 200만달러(약 24억원)로 비슷한 성능의 전용 컴퓨터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돈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미 공군은 지난 3월에도 신형 컴퓨터를 제작하기 위해 PS3 336대를 구입했다.

미군의 이 같은 사례에서 보듯 최근 들어 민간 상용 정보기술(IT) 제품을 그대로 군사장비로 쓰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군사장비와 기술을 민간이 이용해왔던 기존 추세가 역전되고 있다고 전했다.

과거 컴퓨터는 적국의 암호를 해독하거나 핵폭탄 폭발을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개발됐고 인터넷은 방공용 통신망에서 출발했다. 운전의 필수품이 된 내비게이션도 원래는 군대와 군함,미사일 등을 정확한 위치로 보내기 위한 인공위성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 '보잉747'의 조종석이 위로 튀어나와 있는 것은 군용 수송기로 전용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 흐름이 바뀌고 있다. 군사 전용 장비가 복잡한 구매 및 개발 절차를 거쳐야 하는 탓에 빠르게 발전하는 상용 IT 제품과 비교해 구식이 되는 경우가 잦은 데다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치열한 IT업계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뛰어난 제품을 구입하는 게 효율성이나 가격 면에서 매력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

애플의 아이팟은 이미 미군이 대량으로 구매하는 주요 장비가 된 지 오래다. 미군은 아이팟 전용 프로그램(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 통역기로 활용하고 있다. 아이팟은 작전지역 정보 공유 등에 쓰이는 것은 물론 탄도 계산에도 활용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널리 운용되는 무인폭격기 조종도 전용 장치가 아닌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기 Xbox360용으로 시판 중인 조이스틱 조종기를 이용한다.

상용 IT장비를 관공서나 다른 기관에서 전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최근 BAE는 개인용 컴퓨터에 쓰이는 엔비디아의 그래픽 처리장치를 군용기 부품으로 쓰기로 결정했다. 스웨덴 경찰은 이 그래픽카드를 탑재한 가상 부검 시뮬레이터를 개발해 운용하고 있다. 지멘스도 엔비디아의 그래픽카드와 3D 입체 영상 시스템을 이용해 간편한 초음파 태아 진단기기를 개발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첨단기술 수요에서 군사 부문은 연간 1조5000억달러의 돈을 쓰고 있어 7000억달러에 불과한 민간 부문을 여전히 압도하고 있지만 기술 주도권은 민간에 완전히 넘어갔다"며 "무선통신 분야만 살펴봐도 민간에선 연간 10억대 이상의 휴대폰을 판매하면서 무선통신 및 데이터 송수신과 관련된 첨단 기술 진보를 주도하고 있어 군사 부문이 경쟁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조귀동 기자 claymore@hankyung.com